〈여자의 일생〉(기 드 모파상)

때로 신학 서적도, 경건 서적도 아닌 책이 더 복음적인 울림을 줄 때가 있다. 바로 인간이, 아주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몰락하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주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주로 불행하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비롯한 많은 고전들을 보면, 인간은 복음이 없으면 모두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는 사실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한다. 이런 의미에서 〈목걸이〉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모파상의 대표작 〈여자의 일생〉은 내게 큰 울림을 준 작품이다.

이 책은 미래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찬 귀족 소녀 ‘잔느’가 늙어 손녀를 안는 장면까지 한 인생을 기록한 이야기다. 주인공 잔느는 매우 좋은 조건과 환경을 갖추고 있다. 미래에 대한 희망에 부풀어 있는 긍정적 사고의 소유자다. 그녀는 귀족 신분의 부모님 사랑을 듬뿍 받았으며, 아름다운 외모의 소유자로 아름다운 저택도 갖고 있었다. 당대 사람들 보다 평균 이상의 조건을 가지고 있으니 행복한 인생이 충분히 예견되는 사람이었다. 사랑하는 이를 만나 가정을 이룰 일만 남은 사람. 다행히도 그녀는 신부의 소개로 만난 준수한 귀족 ‘쥘리앙’과 결혼에 이른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잔느의 엄혹한 현실이 시작된다. 두 사람은 신혼여행부터 전형적인 성격 차이에 직면한다. 서로에게 실망하며 사이가 멀어진다. 자녀가 태어나지만 남편은 성적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잔느를 고통 속에 몰아넣는다. 돈에 집착하고 성적 유혹에 취약한 남편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아내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는 인간임이 드러난다. 인간 대부분이 그렇듯 남편에 대한 기대가 깨어지니, 하나의 대상에 대한 기대가 깨어지고 나니, 기대의 대상을 바꾼다. 바로 아들이다. 과도한 집착의 대상이 된 아들은 제대로 된 성인으로 성장하지 못한다. 아빠를 너무 닮은 것일까? 그도 어머니의 재산을 갉아먹으며 몰락의 길을 간다. 잔느는 답을 찾지 못한다. 끝까지 막연한 기대에 매달리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기대 대상이 되는 것은 아들이 결혼도 하지 않고 낳은 딸이다. 손녀를 안고 새로운 기대에 부푼 할머니 잔느의 마지막 모습을 끝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이종필 목사(세상의빛교회·킹덤처치연구소)
이종필 목사(세상의빛교회·킹덤처치연구소)

‘있는 그대로의 현실만을 그려내는 것이 작가의 사명’이라고 규정한 스승 플로베르의 가르침에 따라 현실 그대로를 담담히 전달하는 모파상. 그는 우리 인생을 전혀 포장하지 않고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소설의 마지막에 도달하면 아무 반전 없이 모든 기대가 깨어지는 장면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작가가 미워질 정도다.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지 않지만, 우리 인생이란 복음이 필요하다는 강한 확신을 얻게 한다.

이 작품의 작가 모파상은 명성을 얻은 부유한 작가였지만, 쾌락에 탐닉하는 삶을 살았다. 이미 20대에 치명적인 성병을 앓기 시작했고, 시력에도 문제가 생겼으며 우울증도 앓게 되었다. 결국 그는 매독균으로 뇌가 망가져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작가로서의 뛰어난 재능으로 명성을 누렸지만, 그 역시 복음 안에서 답을 찾지 못한 채 잔느와 유사한 인생을 살고 말았다. 분명한 답을 찾지 않고 막연한 기대로 채워진 인생은 불행한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모파상은 그의 작품 〈여자의 일생〉과 자신의 삶을 통해 분명히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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