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구 박사(전 총신대·대신대 총장)

정성구 박사(전 총신대·대신대 총장)가 제59회 목사장로기도회 개회예배 설교를 하고 있다.
정성구 박사(전 총신대·대신대 총장)가 제59회 목사장로기도회 개회예배 설교를 하고 있다.

“성경 가감 없이 전하는 거룩한 꿈 꾸자”

코로나19로 말미암아 수많은 개척교회가 문을 닫고, 생계를 위해서 교역자들이 노동 현장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대형교회도 비대면 예배의 활성화로 성도의 숫자가 줄고, 전도도 안 되고 재정 압박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러한 때 우리 총회의 꿈과 비전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한국 사회와 세계선교를 위한 우리의 꿈은 무엇입니까?

저는 ‘성경과 교회사에 나타난 역사적 인물들의 꿈’을 살펴보고 그 꿈이 우리 교회의 것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조상들의 꿈은 출세나 욕망, 소원성취의 꿈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한 거룩하고 진실한 꿈이었습니다.

첫째는 아브라함의 꿈입니다. 75세에 하나님으로부터 ‘메시야 왕국 건설의 기초’를 쌓으라고 부름 받은 아브라함의 꿈은 자녀가 없던 그가 자손 대대로 복을 받아 복의 근원이 되고, ‘하나님 나라의 초석’이 되는 가정 건설이었습니다. 결단과 순종의 걸음을 걸으며 꿈을 꾸던 그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아들을 얻고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 됩니다.

120년 동안 배를 만드는 늙은이로 산 노아는 인고의 세월에도 그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불의가 판치는 세상에서 의를 선포하는 설교자가 되었습니다. 모세는 왕자의 자리에 있기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종으로 사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시키고, ‘메시야 왕국 건설’에 초석이 되었습니다.

요셉은 총리로서, 정치가로서의 꿈보다 ‘하나님이 인생과 역사의 중심’이 되는 나라를 꿈꿨습니다. 

이사야의 꿈은 이 땅에서 인간과 사회의 진정한 변화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나라가 혼란스럽고 자신의 왕위가 위태로운 지경에서도 ‘하나님만이 문제 해결자’이시고 ‘하나님만이 다윗의 목자’가 되신다는 변함없는 확신의 꿈을 가졌습니다.

아모스의 꿈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였습니다. 참된 나라는 돈과 재물이 풍요한 나라이기보다 각 분야에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입니다. 부패하고 부정한 시대에 살았던 하박국은 젊은 혈기로 문제를 제기하고 불평도 했으나,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결국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날, 하나님의 영광이 온 세상에 드러날 날이 올 것을 꿈꾸었습니다.

예수님의 꿈은 어떠했습니까. 예수님은 우리 구주로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고 죽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인간을 섬기는 것’이 그의 꿈이었고, 그것을 통해서 인간을 구원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 지어다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사랑, 하나님 영광이 사도바울 교리의 결론입니다.

이제부터는 교회사에 나타난 진실한 일꾼들의 꿈을 살펴보겠습니다.

성 어거스틴의 꿈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다스리시는 도시와 나라’였습니다. 칼빈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이 그의 꿈이었습니다. 칼빈은 이 거창한 꿈을 품고 <기독교 강요>를 비롯한 위대한 작품을 써서 오늘날 개혁교회의 초석을 놓았습니다. 청교도의 사회적 이상을 위해 꿈을 꾼 윈스롭, 그에게 ‘경건한 나라’와 ‘참 예배’를 드리는 나라를 세우는 꿈이 있었기에 오늘의 미국이 있게 되었습니다. 카이퍼의 꿈은 삶의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을 인정하는 나라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교회는 물론이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교육 등 삶의 전반에 걸쳐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의 세계관’으로 눈뜨게 했습니다.

존경하는 목사님 장로님. 우리는 교회 성장주의에 함몰되어 철저히 인간의 수단 방법과 유물주의, 인본주의에 빠졌습니다. 우리 교회가 장자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도 부끄러운 사실입니다. 그동안 세상은 너무나 발 빠르게 변해서 우리 교회는 미아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는 개혁교회의 꿈을 절대 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선지자와 사도들과 개혁자들이 생명을 걸고 순교로 지켜낸 진리를 지키며 우리 모두 ‘개혁교회의 꿈’을 함께 꿉시다. 그동안 우리 강단은 약해졌습니다. 어찌하여 역사적 개혁교회의 신조인 도르트신경을 제대로 선포하지 않고, 달콤한 말만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증거해야 개혁주의 교회를 지킬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연약함을 회개합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장자 교단이자 정통 개혁교회의 후예로서 거룩한 꿈을 꾸고 세상을 발아래 짓밟으며 살아갑시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