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베토벤의 대표적 교향곡 5번 ‘운명’은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곡 중 하나다. 그것이 ‘5번’인 줄은 몰라도 ‘운명’이라는 표제는 잘 알려져 있다. 물론 표제가 그 곡을 들은 사람들에 의해 붙여진 것이지만. 1808년 12월, 베토벤의 지휘로 연주된 이 곡은 오랜 세월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청각장애라는 불행한 운명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베토벤. 그러나 그는 그 운명에 맞서 승리했고 이 곡을 비롯한 위대한 작품을 남겼다. ‘솔솔솔 미~’ 세 개의 짧은 음에 하나의 긴 음으로 시작되는 운명. 그렇게 ‘운명이 문을 두드린다’고 해석되는 1악장. 그리고 2, 3악장을 지나 4악장에 이르면 모든 역경을 견디고 승리한 느낌이 가슴에 확 닿는다. 엄청난 고통을 극복한 후에 맛보는 환희! 클래식 음악을 모르는 사람도 충분히 빠져들 것이다. 고통스런 운명을 떨쳐낸 기쁨이 온 몸을 전율케 한다.

그 4악장은 단조로 시작해 장조로 마무리된다. 음악적으로 단조(minor)는 어둡고 차분하지만, 장조(major)는 밝고 경쾌하다. 단조, 장조, 그런 것을 몰라도 그 분위기만은 느낄 수 있다. 4악장은 그렇게 바뀔 뿐 아니라 그 전체적 흐름 역시 매우 역동적이다.

음악가로서는 재앙인 청각상실의 운명을 짊어진 그가 선율로 그려낸 이런 영감이 부럽다. 난 하늘의 생명력을 가진 목사다. 그런 나에게 어떤 문제도 뛰어넘는 생명력이 있는 것인지, 그 선율이 묻는 듯하다.

단조 분위기의 길고 긴 코로나19 상황은 온 세상을 침울하게 했다. 교회도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그 분위기를 경쾌하게 바꿔야 할 작곡자다. 코로나19 속에서도 그 우울함을 완전히 뒤집을 멜로디를 생산해야 한다. 역동적이고 희망적인 분위기로 바꿀 책임을 지고 있는 나는 그렇게 모든 사람의 가슴을 울리며 얼굴에 밝은 미소가 번지게 해야 한다.

이미 그런 힘을 받았다. 교회 역시 그렇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우울한 목사며 교회인 것은 아닌지? 죽음도 뛰어넘는 생명력으로 코로나19가 가져온 단조 같은 우울함을 뒤집어야 한다. 어디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바로 이곳에 천국을 확 끌어당겨 놓을 사명과 충분한 힘을 받은 나다. 그런 내가 베토벤보다는 더 강한 울림을 주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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