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내가 사는 동네 밥집 중에 ‘밥포유’(Bop For You)라는 작은 식당이 있다. 테이크아웃도 가능하다. 그 앞을 지나며 상호를 보면 ‘당신을 위한 밥상을 차리겠다’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나를 위한 밥상을 누군가가 차려 주기를 원하는 세상이다. 그러나 내가 늘 누군가에게 밥을 먹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당신을 위한 밥’이라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시는 동안 밥을 먹이신 사건들이 나온다. 빈들에서 수천명을 먹이시며 천국을 경험하게 하셨다. 심지어 마지막 십자가 사역을 앞둔 상황에서도 제자들에게 빵과 포도주를 먹이셨다. 그리고 그것이 주님의 몸을 죄인들을 위한 참된 양식으로 내어주신 것임을 가르치셨다. 시인의 고백에 의하면 목자이신 여호와는 원수 앞에서도 밥상을 차려주시는 분이다.

‘타자’를 위해 준비한 정성스러운 밥상,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몫이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섬기는 교회는 목요일에 노숙자들의 밥을 차려준다. 수요일에 장보고 반찬 만들고, 목요일 새벽부터 밥 짓고 도시락을 완성하는 손놀림이 바쁘다. 도시락 덕분에 목요일마다 교회로 향하는 노숙자들의 바쁜 발걸음이 이어진다. 그 모습을 보면서 한 끼 밥을 찾는 사람이 많은 이 세상이 고달파 보인다. 그래서 그 허기짐을 면하게 할 밥 차려주는 것이 더 없이 기쁘다.

주일이면 난 이른 아침부터 아내와 함께 삼각김밥을 만든다. 특별한 누군가를 먹일 밥을 준비하는 것이다. 매우 즐거운 시간이다. 물론 영적 양식은 충분히 준비해 놓았으니 그 시간이 아깝지 않다. 그리고 삼각김밥이 지닌 단조로움을 덜기 위해 다양한 속재료를 첨가한다. 맛있게 먹었다는 말이 행복하게 들린다. 엄마들이 종종 이런 말을 한다. 내가 차려준 밥이 자식의 입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배부르다는 말. 그 기분을 알 것 같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구제용 밀가루로 배를 채우던 우리나라였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가 온 세상을 위한 밥상을 차리고 있다. 가장 배고픈 나라인 아이티(Haiti)에 세운 병원에 몰려온 반짝 거리는 눈을 가진 아이들이 밥을 즐겁게 먹던 모습이 떠오른다. 주님께서 그런 우리에게 “내가 주릴 때 먹을 것을 주었다”고 말씀하실 것을 생각하니 내 배도 불러 온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