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2019년 한 해 동안 직접 흡연으로 사망한 30세 이상 국민이 하루 평균 159명이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비용이 12조1913억원이라 하는데 굳이 그런 비용을 계산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하루 평균 159명 사망이라는 것만으로 이미 충분히 큰 손실 아닌가?

흡연의 위험도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정도일 줄은 미처 몰랐다. 교통사고로 일 년에 3000명 정도 죽는다고 하니 비교가 되지 않는다. 흡연을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남성은 1.7배, 여성은 1.8배 사망위험이 높다고 한다. 이런 통계를 접하면서도 여전히 전 세계 흡연인구는 13억명 수준이다. 비록 2000년 이후 조금씩 줄어든다고는 하지만 남자로만 보면 계속 증가추세라고 한다. 위험을 알지만 끊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담배 연기 곁에만 가도 숨이 막히는 나로서는 이해불가다. 그리고 그 담배를 전매청이라는 국가기관이 해왔다는 것, 그리고 지금은 공사를 설립해 맡겼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건강에 조금도 이롭지 않는 것을 왜 만들고 파는지.

도대체 왜 그 죽음의 연기를 흡입하는 것일까? 영화에서는 담배 연기를 내뿜는 것이 멋지게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그 멋진 모습을 흉내 내고 싶어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것이 죽음으로 내모는 연기라는 사실을 인식이나 할까?

그런데 어디 담배 연기뿐일까? 누구나 공기를 호흡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점차 공기조차 오염되어 숨쉬기 어려운 세상이 되고 있다. 일부 취약한 근로 환경에서는 특정 암 발생률이 높게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것은 영적 공기일 것이리라. 이 세상의 더러운 가치관과 인간의 탐욕으로 오염된, 온갖 독소가 가득한 공기 속에서 숨 쉬며 산다. 그것이 심각한 영적 질병으로 몰아가는 것조차 모른 채. 나 역시 그 공기로 숨 쉬다 보니 목사답지 못한 일그러진 모습일 때가 종종 있다. 그렇게 목사로서의 세포가 하나씩 죽어가다가 결국 나의 호흡이 끊길 날을 만날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목사로 사는 나는, 영적으로 질 좋은 산소를 생산하는 푸른 이파리 같은 사람이어야 하지 않는가? 그런 나의 설교가 그들이 흡입하면 독이 될 것들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싶은 걱정의 무게가 오늘은 꽤 크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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