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육십을 막 넘기시고 천국에 가신 아버지 생각이 난다. 내가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그 시절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말 한 마디 못하신 채 내 곁을 떠나신 아버지가 그립다. 고마운 나의 아버지, 그 분은 나로 하여금 전능하신 하늘 아버지를 절실하게 만나게 하신 분이다. 오직 하늘만 바라보며 공부하고 지금의 이 자리에 있게 하셨다.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참 부지런하셨다. 새벽 5시부터 일하시던 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새벽 첫 손님으로 목욕탕에 가곤하셨다. 너무 일러 열지 않은 목욕탕 문을 두드려 첫 손님으로 들어가 깨끗한 물로 목욕했던 기억도 난다. 그렇게 부지런한 아버지는 서울의 약수동에서 꽤 좋은 집에서 내가 살 수 있게 하셨다. 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 말 무렵, 잘 나가던 사업을 확장하시다가 모든 것을 잃으셨다. 그 후 회복 못하신 채 천국에 가셨다.

그래서 중학교 시절부터 힘들게 공부했다. 하교 후 보급소로 달려가 신문을 옆구리에 끼고 저녁신문 배달도 했다. 그렇게 대학원을 마칠 때까지 아버지는 내 물질적 스폰서 역할을 하지 못하셨다. 그런데 그 덕에 난 하늘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전능하신 그 아버지를 일찍이 붙들고 그 분을 경험하며 여기까지 살아 온 것이다.

그 아버지가 그리운 난 어떤 아버지일까? 요즘 와서 난 아들과 딸에게 좋은 아버지가 아닌 것 같아 미안하다. 우리 아이들이 세 돌과 첫 돌을 지났을 때, 난 지금의 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따라서 우리 두 아이에게 난 거의 전능한 아버지였다. 일종의 한풀이였겠지만 구하지 않아도 있어야 할 것을 알고 주곤 했다. 두 아이는 돈 걱정 없이 자란 것이다.

지금 생각하며 미안한 이유는, 하늘의 전능한 아버지를 경험하는 것을 내가 방해한 것 같아서다. 아무 것도 의지할 것이 없기에 하늘 아버지를 절실하게 만난 내가 그들에게는 그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게 한 것 같아서다. 그렇게 생각하니 참 미안하다. 경제적으로는 도움을 주지 못했던 아버지 아래서 전능한 하늘 아버지를 만나고 경험한 나이기에 그렇다. 나의 능력이 하늘의 능력을 가로막은 것만 같다. 그래서 난 좋은 아버지였는지 오늘도 묻고 싶다. 모자란 것 없이 자란 내 자녀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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