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전쟁의 재난에 휩쓸린 우크라이나에 갇힌 19살 딸과 생후 8개월 손자를 탈출시키기 위해 그 전쟁터에 들어간 아버지가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피츠버그에 사는 ‘윌리엄 허버드’.

그의 딸 에이슬린은 우크라이나 키예프 무용대학에 재학 중이었다. 지난해에는 손자 세라핌이 태어나기도 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기정사실화 되자 아버지는 딸과 손자를 데려오려 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병원이 아닌 집에서 태어난 손자의 출생증명서와 여권을 발급 받을 수 없었다. 미국에 되돌아온 아버지가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는 중에 전쟁이 발발하고 말았다.

고민하던 허버드는 다시 우크라이나에 들어가기 위해 3월 초에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이스탄불을 거쳐 바르샤바에 도착했다. 거기서 걸어서 국경을 넘고 차와 열차를 이용하여 딸이 있는 곳까지 들어갔다. 그렇게 이동한 거리는 거의 1만㎞. 그런 역경을 뚫고 수많은 피란민 행렬에 섞여 이동한 끝에 지난 11일에 우크라이나와 슬로바키아 국경에 도달했다. 그렇게 딸과 손자를 안전한 곳으로 이끌어낸 것이다. 허버드는 “어떤 아버지라도 나처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만 km를 오가면서 딸과 손자를 구해낸 열정을 보면서 두 아이의 아버지인 나는 감동을 받았다. 그러나 이내 나라면 할 수 있었을까 싶었다. 발만 동동 구르면서 기도 밖에는 길이 없다고 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포기하면서 하나님께 떠맡기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 아버지는 기도만 하고 있을 수 없었나보다. 직접 뛰면서 엄청난 위험을 감수한 끝에 결국 함께 웃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어디 우크라이나라는 전쟁터뿐일까? 사람 사는 세상이 우크라이나보다 더 전쟁 같은 상황이 왜 없겠나? 과연 그런 상황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건져내기 위한 전쟁보다 더 혹독한 수고와 희생을 감수할 수 있을까? 과연 지금 나는 그렇게 건져내는 사람일까?

하늘 아버지는 나를 건져내기 위해 끔찍한 희생을 감수하셨다는 것을 생각하니 새삼 감동이다. 그런 은총을 입은 나는 얼마나 희생을 짊어지고 있을까? 내 딸이고 손자처럼 여겨야 할 사랑하는 내가 책임져야 할 성도들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해 본다. 그러나 답하기가 민망해 고개를 떨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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