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10위권을 목표로 하는 우리나라. 금메달 몇 개 목표를 제시하며 선수들을 압박한다. 그리고 목에 걸리는 금과 은, 그리고 동메달에 목을 맨다. 금메달리스트는 포디엄(podium)이라 불리는 시상대의 높은 자리에 선다. 거기 서서, 연주되는 국가와 높이 올라가는 국기를 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우리나라처럼 스포츠로 영웅 대접 받고, 평생 연금 혜택, 인기에 따라서는 광고 수익까지 더해 돈방석에 앉혀주는 나라는 몇이나 될까? 이런 현상이나 그 기대는 분명 올림픽 정신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를 비롯하여 아시안게임 같은 각 대륙별 스포츠제전 등에서도 결코 국가별 순위를 매기지 않는다. 그것이 올림픽을 창설한 쿠베르탱의 정신이다. 일부 국가들이 메달 수를 계산해 신문 1면에 그 순위를 정리해 싣고 있을 뿐.

올림픽 게임은 인간의 노력과 땀이 어우러지는 축제다. 그것이 이뤄낸 아름답고 감동적인 장면에 감동받고 아낌없이 박수를 보낼 뿐이다. 어떤 색깔의 메달을 목에 거는 지에 유난히 관심이 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을 지 모르겠다.

운동화조차 신기 힘든 선수가 자비로 출전하는 나라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그런 선수와의 경쟁에서 이긴다 한들 그것이 이긴 것일까? 또 수억 또는 십 수억 인구를 가진 나라와 불과 몇 백만 명 정도인 나라와의 경쟁이 과연 공정한 것이기는 할까? 이기는 것에 매달리는 것이 올림픽 정신이 아님을 알지만 인간의 죄성에는 그런 승부욕이 자리잡고 있다. 몇 등인지 계산하고 서열화하는 데 길들여졌다.

치열했던 대통령선거도 끝났다. 이것 역시 이기고 지는 그 천박한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양새. 승부가 아닌 보다 좋은 세상을 위한 잠깐의 치열한 경쟁이었을 뿐이다. 그런 노력의 결과에 미소 짓거나 그것으로 파생된 현재를 누릴 뿐이다.

높은 곳에서 번쩍이는 메달을 목에 거는 것만이 올림픽의 목표가 아니다. 그라운드에서 마음껏 펼친 열정 그 자체가 보람이고 그것을 즐길 줄 알아야 진정한 올림픽이다. 그래서 비록 메달권에 들지 못해도 감동적인 스토리에 열광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에 끼어드는 천박한 순위 결정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까?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