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국경 모여든 피란민 대부분이 노약자 … 가족과의 이별 아픔 속 눈물의 발걸음

 

 

러시아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성인 남성에게 내려진 징집 명령에 따라 피란민 대부분은 여성과 노인, 어린 아이, 그리고 장애인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이 거센 눈보라를 뚫고 국경을 넘어 루마니아로 건너오고 있다.
러시아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성인 남성에게 내려진 징집 명령에 따라 피란민 대부분은 여성과 노인, 어린 아이, 그리고 장애인이다.

경계선 너머 쏟아지던 눈이 이내 바람을 타고 넘어온다. 흩날리는 눈발과 함께 한 무리의 사람들이 경계선을 넘어 걸어들어왔다. 얼굴이 벌겋게 언 여성의 눈가에 안도감과 불안감이 뒤섞인 눈물이 흐른다. 담요에 덮인 채 휠체어를 탄 노인 옆으로 한 남성이 목발을 짚고 힘겨운 걸음을 옮긴다. 한 손에 엄마의 손을, 한 손에는 인형을 든 아이들은 아무 것도 모른 채 자신을 향하는 수많은 카메라 렌즈를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인다. 전쟁 피해국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마주한 루마니아 시레트(Siret) 검문소의 풍경이다.

루마니아 국경 지대에는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루마니아 국경 지대에는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2월 24일 침공한 이후 국경을 넘어 주변국가로 피란을 떠난 우크라이나인은 약 270만명에 이른다.(유엔난민기구 3월 12일 통계) 우크라이나의 남쪽에 위치한 루마니아에도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교회가 이곳에 긴급 구호 실사단을 파견했다. 전쟁으로 고통 받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돕고 향후 한국교회의 역할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한국교회봉사단(이사장:오정현 목사·한교봉)과 한국세계선교협의회(이사장:이규현 목사·KWMA)가 함께 꾸린 ‘우크라이나 긴급 구호 실사단’은 8일 새벽(한국시각) 한국을 떠나 약 31시간 만에 루마니아 북동부도시 수체아바(Suceava)에 피란민 구제 및 우크라이나 내부 구호 사역을 위한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이번 실사단에는 루마니아 한인선교사협의회(회장:이권칠 선교사) 소속 선교사 세 명과 우크라이나 한인선교사협의회장 한재성 선교사(우크라이나 전쟁대책위원회 위원장)가 합류해 루마니아 교회와의 협력 및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필요에 따른 실질적인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도왔다.

우크라이나인들이 거센 눈보라를 뚫고 국경을 넘어 루마니아로 건너오고 있다.
우크라이나인들이 거센 눈보라를 뚫고 국경을 넘어 루마니아로 건너오고 있다.

목숨 건 피란 행렬 맞이한 한국교회 “고생하셨습니다!”

다시 시레트 검문소 앞, 국경을 넘어온 피란민들을 기다리는 수많은 이들이 있다. 국제구호기구와 지역자선단체, 종교기관 등이 설치한 부스가 100m 이상 줄지어 피란민들을 맞는다. 부스마다 짧게는 몇 시간에서 길게는 며칠까지 필사의 걸음을 내딛느라 지쳐있을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위한 따뜻한 음식과 차가 준비돼 있다. 실사단 역시 현지교회연합회와 함께 부스를 차리고 피란민들에게 장갑과 목도리 등 방한용품을 나눠주며 밝은 얼굴로 위로와 격려의 인사를 건넸다. ‘힘내세요. 한국교회가 함께 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내걸고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사 41:10)는 하나님의 말씀도 우크라이나어로 전했다.

루마니아 국경을 통과한 피란민들이 버스에 타고 이동을 기다리고 있다. ④우크라이나 긴급 구호를 위해 파송된 한국교회 실사단이 시레트 검문소 앞에서 피란민들에게 구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루마니아 국경을 통과한 피란민들이 버스에 타고 이동을 기다리고 있다. 

늦은 밤까지 피란민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러시아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의 18∼60세 남성은 군 징집 대상으로 출국이 금지된 만큼, 피란민 대다수는 노인과 여성, 어린아이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경을 건너온 이들 대부분은 남편 혹은 아들, 아빠와 기약 없는 이별을 한 채 전쟁터에 남겨둔 가족을 걱정하며 그리워했다. 18살과 20살, 두 남동생과 함께 루마니아 국경까지 네 시간 반에 걸쳐 걸어왔지만, 남동생들은 징집대상에 해당해 홀로 루마니아 국경을 넘을 수밖에 없었던 발렌티나 씨는 “우크라이나를 벗어나기는 했지만 인도해줄 사람을 찾지 못해 마치 고아가 된 것 같은 심정”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밝힌 그녀는 “가장 원하는 것은 가족이다. 하루빨리 전쟁이 끝나 헤어진 동생들과 만나고 싶다”며 “오직 하나님께서만 우리를 구원하실 것을 믿는다”고 간절히 고백했다. 

우크라이나 긴급 구호 실사단이 시레트 검문소 앞에서 피란민들에게 구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우크라이나 긴급 구호 실사단이 시레트 검문소 앞에서 피란민들에게 구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쟁 공포’ 더해 ‘혹한 추위’까지…우크라 현지 구호품 발송

실사단은 이번 파견에서 피란민 구제 활동과 더불어 여전히 우크라이나에서 탈출하지 못한 채 전쟁의 위협과 공포에 놓여있는 국민들에게 구호 물품을 보내는 일도 진행했다. 시레트 국경을 통해 인근 우크라이나의 체르니우치(Chernivtsi)와 중서부 도시인 빈니차(Vinnitsa)로 방한용품과 긴급 식량, 의약품 등을 보냈고, 이어 흑해 연안의 남동부 항구도시 콘스탄차(Constanta)로 이동한 뒤에는 피란민들에게 임시 거처와 식량, 의약품 등을 제공하고 우크라이나 내부로도 꾸준히 구호 물품을 보내는 등 이미 활발한 구제 및 구호 사역을 전개 중인 현지 지역 교회 목회자들과 협력해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 도시 오데사(Odessa)로 의약품 및 의료용품을 전했다.

우크라이나 긴급 구호 실사단이 우크라이나 내부로 의약품과 긴급식량, 방한용품 등 구호 물품을 보내고 있다.
우크라이나 긴급 구호 실사단이 우크라이나 내부로 의약품과 긴급식량, 방한용품 등 구호 물품을 보내고 있다.

빈니차는 지난 6일 러시아의 로켓 공격으로 공항이 파괴되는 등 최근 침공이 시작된 곳으로 영하의 날씨 속에 폭설이 내리는 등 혹한의 추위가 이어지면서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전쟁의 공포와 더불어 혹한의 추위와도 싸우고 있는 실정이다. 한 현지인 목회자 사모는 체르니우치에서 피란 중 며칠 전 출산하며 산모와 신생아를 위한 물품을 긴급히 요청하기도 했다. 또한 오데사 인근 미콜라이우(Mykolayiv)에는 최근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병원이 파괴되는 등 민간인들의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실사단이 각 지역으로 보낸 구호 용품은 현지 병원과 교회로 전달됐다.

“끝 모르는 전쟁, 견뎌낼 수 있도록!” 한국교회 기도 부탁

우크라이나 긴급 구호 실사단은 5박 7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14일 귀국했다. 실사단은 루마니아 북동부와 남동부 국경지역 두 곳을 통해 피란민 구제 활동 및 우크라이나 내부 긴급 구호 물품 발송 등을 전개하며 2000만원을 지원했고, 한인 선교사 및 현지 교회와의 협력을 통해 추가 지원 및 앞으로 전후 복구 등에 있어서도 한국교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았다.

한교봉 천영철 사무총장은 “우크라이나 국민 270만명이 난민 형태로 인접국으로 대피했다면, 반대로 여전히 4000만명 이상은 전쟁터 안에서 고통당하고 있다. 피란민들을 환대하는 것만큼이나 여러 가지 이유로 그 땅을 떠나지 못하는 이들을 향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이번 실사단 활동이 마중물이 돼 우크라이나를 향한 한국교회의 마음이 모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KWMA 박래득 사무국장도 “우크라이나 선교사회가 요청하는 현지 피란민의 필요를 파악하고 우크라이나 교회와의 네트워킹을 통해 전쟁 상황과 전후의 실제적인 필요에 맞는 공급에 힘쓸 것”이라고 전했다.

끝으로 이번 실사 활동에 동행한 한재성 선교사는 또 한 가지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우크라이나를 영적으로 재건하는 일”이라면서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깨어진 심령 가운데 영적인 씨앗이 심길 수 있도록 끝까지 우크라이나를 잊지 않고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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