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널리 알려졌듯이 삼일운동 당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기독교인은 과반수인 16인에 달했고, 비서명자 48인 가운데도 절반인 24인이 기독교인이었다. 당시 기독교인이 전체 인구의 2%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이 역사적 사건을 주도했음을 증명하는 역사적 기록이다.

어디 그 뿐인가? 삼일운동으로 피해를 입은 교회가 얼마나 많은가? 총독부가 1919년 5월 발표한 통계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전부 파괴된 예배당이 17동, 일부 파괴 24동, 그 외의 예배당 손해가 41동이다. 교회 재산의 손해액을 달러로 환산했을 때 3만 달러였다고 한다. 그리고 삼일운동 그 해 6월 30일 현재로 투옥된 사람의 수에서도 그것이 드러난다. 기독교인이 2190명으로 유교나 불교, 천도교인을 합한 1556명보다 훨씬 많았다. 투옥된 교역자도 151명으로, 당시 천도교 직원 72명의 배 이상이었다.

가장 앞장선 교회가 피해 역시 많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피해 기록은 교회 역사 속에서 빛나는 면류관이지 않겠는가? 그 엄청난 손해와 희생이 이 민족과 나라가 오늘에 이르는 진정한 밑거름인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 기독교의 역사에는 늘 피가 흐른다. 그 피가 교회를 지키는 힘이었고 교회를 교회답게 만든 능력이었다. 그리스도의 피가 그러했듯이 교회가 역사 속에서 흘린 피의 가치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오늘의 교회는? 희생과 헌신보다 가성비를 추구하고 있지 않은가. 손해보려 하지 않는다. 그래도 이익이 된다 싶으면 앞을 다툰다. 이름이 나는 곳에는 돈도 사람도 몰린다. 반면 빛이 나지 않을 때는 슬그머니 뒤로 돌아선다.
성령충만 이전의 제자들이 그랬다. 유리할 때 누가 ‘넘버원’인지 다투었다. 하지만 주님이 잡힐 때 뿔뿔이 흩어졌다. 인간적 욕망만을 좇던 때의 모습은 추했다.

역사 속에서 손해보고 빛은 못 봤던 인물과 교회의 가치는 높이 평가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교회는 빛을 보는 곳에만 존재하려는 것 같아 슬프다. 과연 손해보고 잃고 희생하더라도 주님이 귀하게 여기는 일에 나는 익숙한지 생각한다. 곳곳에 얼굴과 이름을 내는 일에만 온통 몰리는 것 같은 교회의 행태는 교회의 생태계를 위험하게 만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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