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미국의 남북전쟁에서 북군이 승리 후 링컨에 의해 흑인노예해방이 선언되었다. 1863년 1월 1일이었다. 그런데 그 선언으로 인해 흑인들은 새로운 세상을 살 수 있었을까? 아니다. 선언 이후 100년 동안 확실하고도 분명한 차별은 여전히 존재했다. 물론 지금도 인종 차별이 미국 사회에 중요한 이슈이긴 하지만….

그 100년 후인 1963년 8월 28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직업과 자유를 위한 워싱턴 행진’이 펼쳐졌다. 흑인과 백인의 평등과 공존에 대한 요구를 담았다. ‘마르틴 루터 킹’의 유명한 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가 주목을 받았다. 그로부터 미국 사회는 비로소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노예해방 선언 후 꼭 100년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비로소 많이 달라졌다. 바로 이 1863년부터 1963년까지의 100년을 역사학자들은 ‘던 위다웃 모닝’(dawn without morning) 즉 ’아침이 없는 새벽‘이라고 부른다. 분명히 새벽이 왔다. 그래서 곧 아침이겠거니 했는데 여전히 어슴푸레했다. 선명한 아침빛은 보이지 않았었다.

요즘 느끼는 기분이 이렇다. 총신대학, 총회, 그리고 한국교회. ‘아, 이제는 아침이 왔다’ 싶은데 여전히 흐릿할 뿐, 선명하지 않다. ‘이게 뭐지’ 싶다. 그 사람이 사라지면 아침이 올 것 같았고, 그 것만 제거하면 희망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또 기대했던 그가 등장했어도 아침은 아직 온 것 같지는 않은 이 허탈감은 무엇일까?

이렇게 현실은 아직 아침이 아니다. 아니 이러다가 아침 없이 저녁을 맞고 밤이 온 세상을 삼켜 버릴 것 같아 두렵기까지 하다. 하긴 유신체제가 끝나면 민주주의가 실현될 것 같았는데 또 새로운 군사독재가 또 이어졌으니 우리도 쉽지 않을 것이다.

킹 목사의 흑인인권운동에서 많이 불린 노래가 생각난다. ‘위 쉘 오버 캄’ (We shall over come), 나도 학생 시절에 많이 불렀다. 교회 중고등부에서도 그랬었다. 그렇다. 무엇을 뛰어넘고 무엇과 싸워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이긴다면 무엇을 위한 승리인지도 이 참에 정리해보고 싶다. 여전히 새벽? 그래도 아침이 오리라는 희망은 포기하지 않아야지.
위 쉘 오버 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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