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미국 프린스턴신학교의 상징과도 같은 학교 예배당에 붙은 ‘밀러 채플’이라는 이름이 사라진다. 이 대학 두 번째 교수였던 ‘새뮤얼 밀러’를 기념하기 위한 예배실이었다. 1834년 이후 지금까지 사용되어 왔는데 이제 그 이름을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단다. 당분간 ‘세미너리 채플’로 부르기로 하고 새 이름을 위한 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무슨 이유일까? 밀러 교수는 장로교 목사이기도 했다. 그런 밀러 교수가 일생동안 흑인 노예를 고용했었음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그와 관련한 연구에 따르면 밀러는 공식적으로는 노예제를 반대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신은 노예를 부렸던 것이다. 역사적 기록으로 이것을 확인한 이상 계속 그 이름을 채플에 붙여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프린스턴신학교 이사회가 ‘지난날의 잘못을 회개하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도약하기 위한’ 조치를 한 것이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역사 바로 세우기’라고나 할까? 프린스턴신학교의 이 쉽지 않은 결정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사실 밀러 교수가 활동하던 당시에 노예를 부리는 일은 흔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시대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그것을 지지하지 않았다. 그러나 밀러는 자신의 신념과도 대치되는 시대적 흐름인 노예제도를 반대하는 목사이며 교수였지만 현실적 한계를 뛰어넘기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현실과 타협했던 그는 지금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대가로서는 참 잔혹하다. 그 이름이 지워지는 것은 존재가 사라지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니.

내가 알고 또 믿는 대로 삶을 가꿔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것이리라. 그렇지 않으면 나 자신에게 내가 속는 것, 목사로 살아가는 나 역시 믿는 것과는 다른 삶에 익숙한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말씀을 잘 알고 가르치는 사람이기에 더 큰 책임이 있는 나는 갑자기 그 무게를 느낀다. ‘산정현교회 담임목사 김관선’이 오고 또 오는 후대에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는 무게 말이다.

한치 앞도 모르는 내가, 앞으로 20년쯤 지나도 이 세상에 살아있을 것 같다는 부질없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만일 그 때 산정현교회가 갑자기 내 이름을 교회 역사에서 지우고 싶어 한다면 ‘나’라는 존재는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것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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