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기택(송강호): 이 사모님이 참 순진해. 착하고. 부잔데 착하다니까.
충숙(장혜진): ‘부잔데 착해’가 아니라 부자니까 착한거지, 뭔 소린지 알어? 솔직히 이 돈이 다 나한테 있었어 봐. 나는 더 착하지, 착해.
기택: 그건 그래. 네 엄마 말이 맞아. 부자들이 원래 순진해, 꼬인 게 없고. 부잣집은 또 애들이 구김살이 없어.
충숙: 다리미야, 다리미. 돈이 다리미라고. 구김살을 좌~악 펴줘.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했던 영화 <기생충>의 대사 일부분이다. 기발한 사기를 쳐서 온 식구가 부잣집 가정교사, 기사, 가정부로 취업에 성공한 후 나눈 가족 간의 대화다. 이야기는 ‘부자니까 착하다’, ‘돈이 다리미 역할해서 구김살을 펴준다’는 등으로 결론짓는 듯 가벼워 보인다. 그러나 이런 대화가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오르게 한다.

물론 정말 그렇게 믿는 기택의 가족같은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에 그리스도인으로서 동의할 수 있을까? 정말 돈이 구김살을 펴주는 것일까? 돈이 나를 착하게 만드는 것일까? 얕은 신앙일지라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신앙이 없더라도 그렇게 믿는 이가 많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주변을 돌아보면 심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는 돈이 없어 인생을 구겼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많아 보인다. 하긴 돈이 많으면 웃을 일이 꽤 많은 것 같으니, 그것이 생활의 고달픔도 펴주고, 개척교회의 구김살도 펴줄 것이라는 믿음은 체험에 근거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내 속에도 돈이 많으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의식이 밑바닥에 깔려있는 것 같아 움찔한다.

2022년을 시작하면서 어려웠던 지난해보다 경제적으로 좀 더 넉넉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품는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야 누가 나무랄까? 그러나 그동안의 삶을 돌아보니 주 안에서 구김살 없이 살았던 것이다. 내 구김살을 돈이 펴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나도 모르게 곳곳에 자리 잡은 구김살이 좌~악 펴지면 좋겠다. 그것을 펼 수 있는 힘이 하늘에서 오는 것임을 알기에, 비록 주머니가 넉넉하지 않아도 웃으며 살리라. 그리고 더 착해지리라. 올해도 설교를 듣는 성도들이, 내 얼굴이나 메시지에서 구김살을 찾아볼 수 없도록.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