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길고 지리했던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안정되는 듯하고, 또 백신접종률도 80%대로 높아지자 ‘위드 코로나’를 계획한 방역당국. ‘단계적 일상회복’이라고 했던가. 그러나 45일 만에 그 ‘위드 코로나’는 끝이 나고 말았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자신만만하던 우리를 비웃기나 하듯 그 위세를 무섭게 떨치고 있다. 더욱이 ‘오미크론’이라는 변종의 등장으로 감염자수는 연일 기록을 갱신하고 있지 않은가.

다시 거리두기로 회귀하면서 자영업자들의 탄식이 곳곳에서 구슬프다. 영업시간을 단축하고 사적모임의 숫자를 줄일 수밖에 없는 방역당국도 얼마나 어려울까 싶다. ‘위드 코로나’로 가던 우리 사회가 겪는 현재의 문제를 접하면서 영적으로도 큰 도전을 받는다. 그렇다. 그리스도인의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결코 함께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반드시 이겨야지, 함께해서는 안 되는 것 말이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는 영적 선명성에 있지 않겠는가. 바울 사도가 강조한 말씀이 생각난다. 선과 악이 병립할 수 없고, 빛과 어두움이 함께 갈 수 없다.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할 수 없고, 의와 불법, 빛과 어둠은 결코 사귈 수 없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를 이루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겠는가? 생각조차 안 된다. 성전과 우상의 공존은 불가능한 것이다.

목사로 살아가는 난, 세상을 뛰어넘어야 하는 존재이기에, 그것들과 공존은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할 수 없다. 세상살이에 어쩔 수 없다면서 어둠을 친구 삼아도 안 되고, 딴 생각 품고 예배할 수 없는 것이리라. 세상 속에 살지만 세상과 결코 손잡을 수 없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를 분명히 해야지.

그러고 보니 ‘거리두기’, 그것이 정답이었다. 세상과의 그 거리를 확실히 하고 주님과의 거리는 좁힐수록 좋을 것이고. 이런저런 명분으로 돈을 따르고 세상의 가치를 밀어내지 못하는 난 백신접종 하듯 말씀으로 무장했다고 하지만 돌파감염의 위험에 노출되고 있는 것.

‘위드 코로나’가 위험하듯 ‘위드 월드’는 더욱 그렇다. ‘위드 크라이스트’, 그리고 ‘위드 로고스’일 뿐! 그렇게 주님 곁을 살아가며 세상과는 좀 더 멀리하고 싶은데, 이미 익숙해진 그 맛을 끊기가 쉽지 않으니 탄식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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