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크리스마스’하면 화려한 불빛의 장식과 길거리에 울리는 캐럴이 생각나기 마련이다. 하얀 눈도 내려주면 더 없이 좋은 분위기가 조성된다. 크든 작든, 도시든 농촌이든, 교회는 최고의 명절 분위기를 잔뜩 띄우고, 어린아이들은 모처럼 신나는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나도 충현교회 유년시절 예쁜 옷 입고, 이런저런 재롱을 떨며 노래하고 춤추던 일이 생각난다.

요즘은 예전 같지 않다. 더욱이 코로나19로 잔뜩 위축된 분위기 때문에 크리스마스 역시 회색빛으로 보인다. 언제부턴가는 저작권 문제로 길거리의 캐럴소리도 사라졌다.

전 같지 않은 크리스마스 분위기. 그러나 이것을 부정적으로만 보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주님 탄생의 의미를 보다 건강하게 드러내는 데 힘을 쏟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낮은 곳에 오시고 인간을 위해 죽어주신 주님. 그런 의미에서 이 세상에 오신 주님의 탄생을 축하한다는 것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사람으로 오셔서 온갖 고통을 다 경험하신 것을 어찌 축하만 하겠는가? 그러기에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즐겁다면, 나만 그렇고 사람들만 좋을 뿐!

그런 은총을 입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분이 그러셨듯이 낮고 어둡고 탄식이 가득한 곳을 찾아 손 잡아주며 위로하고, 희망을 선물하며 진정한 명절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의미 없는 들뜬 분위기에 취해, 그저 즐기며 선물을 주고받고 파티를 여는 크리스마스라면 주님께서는 어떻게 보실까? 교회조차 그런 분위기에 휩쓸린다면 어떻게 보실까?

코로나19로 더 어려워진 이웃은 낮은 곳에 오신 주님께서 더 관심 갖는 대상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의 손을 대신하기를 원하실 것이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이라면 나의 흥청거림보다는, 그들의 외로움이나 아픔에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늘 그렇듯이 명절이면 더 쓸쓸하고 고달픈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한겨울에 맞는 성탄절이 더 스산하고, 난방비 걱정에 어쩔 줄 모르는 이웃이 있다.

성탄절 헌금으로 연탄 몇 장이라도 나눠 따뜻한 열기를 나눠주는 것. 새학기를 준비하는 것이 힘겨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하는 것. 이것으로 멋진 성탄절 분위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난 그런 돈을 쓰면서 기뻐해야 할 사람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주님께서는 화려하게 빛나는 수백, 수 천 만원짜리 성탄장식을 기뻐하실 것 같지는 않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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