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현 목사(목장교회, 기독신문 사장 대행)

팬데믹 위기 역전시킬 하나님의 섭리 교회·민족 부흥 기대케 해

김상현 목사(목장교회, 기독신문 사장 대행)
김상현 목사(목장교회, 기독신문 사장 대행)

3. 목회적인 측면

스코틀랜드에서 탁월한 기도 목회로 부흥을 주도했던 목회자는 로버트 맥체인이었다. 맥체인은 19세기 초 영국 청교도 중의 한 사람으로서 탁월하게 하나님과의 교통의 진면목을 보여준 인물이었다. 역사가들은 그의 삶을 조명한 후 완전에 가까울 정도로 철저한 순종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런 순종과 헌신을 목회의 신조로 삶았던 맥체인이 강단에 서는 순간부터 벌써 청중들이 회개의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고 하니 그 얼굴에서 비춰지는 거룩과 영광의 빛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만 하다.

찰스 스펄전은 “맥체인의 전기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꼭 읽어야 한다”면서 “맥체인의 설교와 목회가 하나님의 능력에 사로잡힌 바 되었다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맥체인은 29살의 일기로 생을 마감하면서 불과 7년 반 동안의 사역을 수행하고 영원한 본향에 입성했으니 기도와 성결의 모범을 보여준 경건의 삶은 장엄의 극치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맥체인은 1813년 5월 21일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더블린 가에서 태어난 후 1827년부터는 에든버러 대학교에 입학해서 인문학을 공부했고, 1831년부터는 신학부에 진학하여 목회 수업을 받았다. 그는 신학도 시절부터 기도와 금식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훈련을 쌓으면서 헌신을 결단했다. 그렇게 해서 영적인 눈을 뜬 후 맥체인은 지속적으로 죄와 싸우며 경건한 삶을 살려고 몸부림쳤다. 그러다가 신학 수업을 마치고, 1835년 1월 1일부터 에딘버러 노회로부터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

1835년 7월 1일에는 설교자 인허증을 받고 11월 첫 주부터 존 보나르 목사가 시무하던 라버트와 두니페이스 교구의 부교역자로 청빙되었다. 그곳에서는 6000여 명의 교구 주민들을 돌보며, 설교와 심방 등 교구 관리로 부교역자 사역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 후 1836년 11월 24일, 맥체인은 23살의 나이에 목사 임직을 받은 후 던디의 성 베드로교회로부터 담임목사로 청빙 받았다. 담임목사로 부임한 후 그는 지칠줄 모르는 열정으로 하루에 6시간 씩 심방과 상담에 전력하며 영혼을 돌보았다. 틈만 나면 기도와 금식으로 자신의 영혼을 깨끗하게 했고, 경건하고 성결한 삶을 위해서 철저하게 죄를 회개하는 일을 쉬지 않았다. 부임 후 얼마 되지 않아 성베드로 교회당의 1100석이 가득차게 되는 강력한 부흥을 이루었다. 그후에 계속해서 놀라운 부흥이 계속되어 스코틀랜드 전체 교회를 불태웠다. 그 놀라운 부흥은 맥체인이 사역을 마칠 때까지 그치지 않고 스코틀랜드 교회사를 길이 빛내 주었다.

맥체인은 29년 10개월을 지상에 머물다가 하나님 나라로 입성했으나, 그가 짧은 목회 중에 이루었던 부흥은 기도와 금식의 결과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역사였다. 기도는 목회를 윤택하게 하고, 영혼을 기름지게 한다. 기도는 부흥을 이루는 지름길이다. 코로나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제106회기에서 배 총회장의 제안으로 발대식을 하는 은혜로운동행기도회는 목회적인 측면에서 스코틀랜드에서 부흥을 불꽃을 지피었던 맥체인의 기도를 지표로 삼고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배광식 총회장이 스코틀랜드 유학시절에 듣고 익혔던 맥체인의 기도 목회를 밴치마킹하듯 기도로 부흥을 갈망하며, 총회와 전국교회 그리고 한국교회의 재도약을 기대하면서 기도운동을 전개한 것으로 파악된다.

4. 교단사적인 측면

우리 교단의 역사를 보면 위기 때마다 늘 기도운동을 펼쳐왔다. 역사적인 기도회 현황을 살펴보면, 장로회 총회가 직영해 오던 평양신학교가 일제의 강압에 의해 폐교된 가운데서 해방을 맞이하자 1945년 11월 14일~21일 평북노회 주최로 열린 평북지역 6개 노회(평동, 평북, 용천, 의산, 산서, 삼산)에서 특별기도회를 가졌다. 당시 집회에는 200여명이 참석했고, 강사는 이기선 목사와 박형룡 박사였다. 기도회에서 박형룡 박사는 장로교회 재건의 기본 원칙, 곧 총회의 방향성을 발표하기도 했다.

기도회 후 총회는 박형룡 박사의 지도하에 정통보수신학을 구축하고, 신학과 교단 정치의 방향을 제시했다. 그 모든 과정은 총회를 위한 뜨거운 기도로 시작하여 교단의 정체성을 견고히 한 것이었으니, 우리 총회의 역사는 바로 기도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후에도 총회는 위기의 때마다 특별기도회를 갖고 전국교회가 하나되었으며, 기도로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다.

1950년 6.25 전쟁 중에는 대한민국과 한국교회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했을 때 전국적인 기도운동을 장로교 총회가 중심이 되어 진행했다. 당시 장로교 총회의 지도자들은 기도로 민족을 살리고 대한민국을 지키며, 교회를 살리자는 긴박함으로 전쟁 중에 기도회로 모였다. 일차적으로 대전에서 대한기독교구국회를 결성하여 기도 모임을 갖고 목숨을 건 결사적인 기도의 불을 지피었다. 그후 부산에서는 노진현 목사가 시무하던 중앙교회에 모여서 뜨거운 기도 모임을 가졌다. 피난 중에 목숨을 내건 목회자들과 수백명의 성도들은 전쟁 중에 나라를 지켜달라고 간구했다.

전쟁 중에 이어진 기도회는 미국 밥 피얼스(Bob Pierce) 목사와 함께 부산 송도에서 400명이 모인 가운데 특별 집회를 갖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의 남침으로 전국토가 함락되고 대구와 경남일부 지역만 남아 조국의 미래가 심각해졌다. 바로 그때 초량교회 출석하던 경남 도지사 양성봉 장로가 피난 중이던 약 250명의 교역자들을 초량교회에서 거처할 수 있도록 주선한 것이 계기가 되어 초량교회에서 교역자 중심의 기도처가 마련되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전국의 목사 장로들이 초량교회 한상동 목사를 중심으로 8월말부터 9월 중순까지 2주간 동안 구국기도회를 시작했다. 그 기도회에서는 전국의 목사 장로들이 회개하며 기도하는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다.

한상동 목사는 신사참배와 교권 다툼으로 벌어진 장로교회의 실상과 목사 장로들이 말씀을 떠난 것에 대해 회개를 촉구하자, 참석한 목사 장로들은 우상숭배, 간음, 교회를 버린 것, 양떼를 바로 돌보지 못한 것, 교권다툼 등의 죄를 통회하면서 나라를 살려달라고 눈물로 간구했다. 그렇게 불이 붙은 회개 기도가 1주일간 밤낮으로 계속되다 부산 전지역과 제주도까지 이어졌는데, 그 후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여 전쟁의 승기를 잡았다. 결국 장로교 총회 산하 목사 장로들이 앞장서서 눈물로 회개하고, 뜨겁게 기도할 때 그 기도의 불이 퍼져나갔고, 기도 응답으로 우리나라가 다시 살아났던 것이다.

그 후에도 1959년 WCC문제로 통합측이 이탈해 나가고, 1960년 4.19민주혁명과 1961년 5·16 쿠데타가 있고 나서, 1964년 군사정부 등 참 어려운 때에 총회는 전국목사장로기도회를 시작했다. 1964년 2월 25일부터 28일까지 2박 3일간 서울 충현교회에서 제1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로 모여 교단의 하나님과 부흥을 위해 전국적인 기도회를 가졌다. 당시 교단이 목회자 후보생의 교육을 위탁하여 세운 총회신학교는 학교 자리를 찾지 못하였고, 총회도 건물도 없이 세 들어 살 때 ‘오직 기도하면 산다’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매달려 목사장로기도회를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전국적인 특별기도회는 교단사적인 측면에서도 큰 의의가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교회의 동력이 떨어지고, 믿음이 약해질 때 15년간 개인적인 산 기도를 통해서 기도의 위력을 체험한 배 총회장을 세워 ‘은혜로운동행기도회’를 교단적으로 전개한 것은 교단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나가면서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제106회 배광식 총회장에 의해 제안된 ‘은혜로운동행기도회’는 개혁신학을 우리에게 신학 유산으로 전수해 준 칼빈의 특별기도론과 한 시대를 영적 대각성으로 이끌었던 에드워즈의 끈질긴 기도론을 전수한 것으로 평가된다. 뿐만 아니라 목회적으로는 스코틀랜드에서 기도목회로 부흥운동을 주도했던 로버트 맥체인을 모델로 삼았고, 교단사적으로도 국가와 총회가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 앞에 울며 기도하던 믿음의 선진들의 기도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은혜로운동행기도회’는 단순히 연례적인 행사 차원을 넘어서 개혁신학적이고, 부흥운동사적, 그리고 목회적이며 교단사적인면에서 그 의미가 크며, 우리 민족과 총회 그리고 전국교회를 살리는 방편으로 출범하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린다.

이런 역사적인 특별한 기도회가 제106회 총회장에 의해 전수된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이는 전 세계교회와 한국교회 그리고 우리 교단이 팬데믹 위기에 처한 현실을 뚫고 일어서기 위해 영적 돌파구로 주신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라고 생각된다. 더욱이 15년 동안 무릎을 단련시킨 배 총회장을 세우셔서 ‘은혜로운동행기도론’으로 부흥의 불을 지피울 준비를 하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놀랍기만 하다. 배 총회장은 이미 칼빈이나 에드워즈, 맥체인 그리고 과거 믿음의 선진들이 경험했던 특별한 기도나 끈질긴 기도 및 간절한 기도를 목회 현장에서 체험한 바 있다. 그는 오직 기도만이 개인과 교회가 사는 길이요, 부흥의 발판이라는 것을 15년간의 산기도 철야를 통해서 실감나게 경험했다.

이제 배 총회장은 제106회 총회를 기점으로 개인의 영성과 대암교회 강단을 넘어 총회를 살리기 위해 칼빈이나 에즈워즈처럼 특별기도론이나 끈질긴 기도론을 주창하면서 ‘은혜로운동행기도회’를 전국적으로 펼쳐 나간다는 방침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아무쪼록 11월 30일 울산 대암교회에서 발대식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확산될 ‘은혜로운동행기도회’가 팬데믹 위기를 능히 이겨내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개혁신학과 부흥운동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배 총회장이 15년간 이어온 산기도 영성을 바탕으로 내건 ‘은혜로운동행기도론’은 존 칼빈의 특별기도론과 조나단 에드워즈의 끈질긴기도론, 그리고 맥체인의 간절한 기도론 및 위기의 때 국가와 총회를 살려냈던 기도회를 계승한 특별기도운동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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