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언 목사의 섬마을 순례]

금당도는 면적 13.91㎢에 536가구 1100명 인구가 모여 사는 섬이다. 고흥 녹동에서 소록도을 지나 50여 분을 달리면 금당도에 이른다. 행정구역으로는 완도군에 속하지만, 장흥 회진과 고흥 녹동에 생활권을 두고 있다.

금당도의 관문 울포에는 여객선이 닿는 선착장과 면사무소를 비롯한 여러 관공서가 모여 산다. 한때는 부자 섬이었던 곳이라 주민들의 교육열이 유난히 높다. 60~70대의 노인들도 대부분 육지의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녹두장군> <암태도> <자랏골의 비가>를 쓴 작가 송기숙 씨가 바로 금당도 출신이다.

금당도에서 바다 의존도가 가장 높은 마을은 가학리이다. 마을 형세가 학처럼 생겼다고 해서 가학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40년 전쯤 과거에는 김 양식이 매우 활발했던 지역이지만, 지금은 톳과 미역 그리고 다시마 양식을 많이 하고 있다.

가학리의 김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호황을 누려 일본으로까지 수출이 됐다. 지주식 김 양식에 최적지였기 때문이다. 한창 때는 초등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김 양식에 나설 정도로 수지가 맞는 일이었다고도 한다. 13곳이나 되던 김 공장이 지금은 3곳으로 줄었다. ‘물김’조차 다른 곳에서 들여와 금당도에서는 가공만 한다.

미역 양식은 1974년 가학리 인근 무인도에서 최초로 시작했다. 금당도의 봄은 미역 농사로 시작한다. 2월 중순이 되면 금당도 앞바다가 미역 어장을 오가는 배들로 분주해진다. 소형 어선들이 자그마한 크레인으로 밧줄을 들어 올린 뒤, 다닥다닥 붙어있는 미역줄기를 뜯어내 운반선으로 옮긴다. 뭍에서는 미역을 소금에 버무려, 봄 햇살에 널어 말린다.

바다에 띄워놓는 100m짜리 밧줄 하나에 붙어 있는 미역줄기가 1톤가량, 가격으로 치면 7만원에서 많게는 10만원 안팎을 받는다. 한 집이 보통 300줄에서 500줄 정도를 거둬들이니 미역으로 연간 2~3000만원 소득을 올리는 셈이다. 미역 철은 4월 20일까지 이어지고, 5월부터는 다시마를 수확한다. 6월부터는 톳도 나온다. 그래서 금당도 앞바다는 여객선이 오가는 뱃길만 빼고는 모두 양식장이다. 섬이 양식장에 둘러싸인 형국이다.

금당도는 경치가 좋아 영조 때 존재 위백규(魏伯珪)가 지은 ‘금당별곡(金塘別曲)’이 있다고 한다. 금당별곡에 등장하는 금당8경은 다음과 같다. 산 정상의 노송 사이로 맑게 갠 하늘에서의 밝은 달의 경치 ‘공산제월(孔山霽月)’, 이른 새벽 적막을 깨며 들려오는 종소리의 청아함에 심취되는 ‘사동효종(寺洞曉鐘)’, 봄비 내리는 기봉의 아지랑이와 만물이 움트는 소리가 들리는 경관의 ‘기봉세우(箕峯細雨)’, 녹음우거지고 저물어져간 포구에 흰 돛단배 한가로이 돌아오는 한 폭의 그림인 ‘울포귀범(鬱浦歸帆)’, 깎아 세운 듯 보이는 괴석 적벽에 외로이 선 소나무 가지가 청풍에 한들거리는 ‘적벽청풍(赤壁淸風)’, 터질 듯 보이던 저녁노을이 식어지면 화조의 석양이 천연색 구름을 이루는 ‘화조모운(花鳥暮雲)’, 석양은 학잠의 나뭇가지에 걸렸는데, 붉게 붉게만 비친다는 ‘학잠낙조(鶴岑落照)’, 우뚝우뚝 솟은 암석 사이로 목동의 피리소리가 신선의 노래를 연상케 한다는 ‘각암목적(角岩牧笛)’.

금당의 해안에는 해변의 암석 중 암맥이 약한 부분이 깎이어 바닷가 동굴을 이루고 있는데, 완도 해안 중 대표적 경관이라 할 수 있다. 그 중 선박을 통해 유람할 수 있는 코끼리바위, 병풍바위, 부채바위 등 기암이 천하절경이다. 자동차로 다니면 파도처럼 오르락내리락하는 고갯마루에서 크고 작은 섬들이 아름답게 뿌려져 있는 다도해가 바라보인다.

금당도에는 3개의 교회가 있는데 면소재지의 금당장로교회와 가학리교회는 자립교회이면서, 선교하는 교회로 지역 사회에 모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