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언 목사의 섬마을 순례]

기러기를 쏙 빼닮은 모양, 푹 들어간 섬의 가운데 부분에 자연적으로 호수가 만들어져 배들이 풍랑을 피해 들어오는 데 유리한 지형을 갖춘 천혜의 섬. 그 모습이 기러기를 닮았다 하여 이 섬은 예부터 안도(雁島)라 불렸다. 안도는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에 딸린 섬으로, 면적 3.96㎢에 해안선 길이는 29㎞에 이른다. 여수 남쪽 34㎞ 해상에 자리 잡고 있다.

안도에는 1860년 대화재가 발생했는데, 당시 전체 300여 가구 가운데 한 집만 놔두고 모두 불에 타서 주민들은 이웃에 있는 금오도와 연도 등으로 집단 이주를 했다. 다행히도 이후 안도는 다시 번창의 길로 들어서 1918년에 경찰 주재소와 어업조합이, 이듬해엔 안도심상소학교가 세워졌다. 한때는 수산업이 아주 활발하게 이뤄진 탓에, 안도에선 개가 돈을 물고 다닌다는 우스갯소리도 돌았다고 한다.

오늘날 안도의 풍경은 옛날과는 많이 달라졌다. 2010년 3월 금오도와 안도를 잇는 안도대교 공사가 완료되면서부터다. 두 섬이 다리로 연결되면서 여수에서 뱃길로 1시간 40분 걸리던 이동시간도 짧아졌다. 여수 돌산 신기항을 통해 차도선을 타면 수시로 안도에 이를 수 있다. 특히 이웃한 금오도 비렁길이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덩달아 안도를 찾는 관광객도 늘어나는 추세다. 여러 섬을 여행하기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안도 상산 둘레길 또한 매력적이다.

동고지마을로 들어서기 전, 물이 맑고 깨끗한 안도해수욕장(혹은 백금포해수욕장)이 자리잡고 있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고개를 넘어 백금포마을 해안에 가 닿으면 탁 트인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여름철만 되면 모래가 어김없이 몰려와 넓은 백사장을 이루며, 바닥이 평평해 해수욕하기에 아주 적합하다.

이야포 몽돌밭해수욕장도 있다. 이야포 해변에는 수천 년 동안 파도에 서로 부딪치면서 닳은 작은 몽돌밭이 있다. 자갈 사이로 밀려들어온 바닷물이 다시 쓸려 내려가면서 내는 소리는 그야말로 자연 그대로를 느끼게 한다. ‘이야포’라는 이름은 어부들이 바다에 나가 그물로 고기를 잡을 때, 노동의 힘겨움을 이겨내고 서로 호흡을 맞춰 일의 능률을 높이고자 “이야 이야”하면서 가락을 맞춘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다른 말로 ‘이앳게’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안도는 역사적으로 여러 시련을 겪어왔다. 6·25전쟁 당시에는 안도에 도착한 군인들이 주민들을 초등학교에 집결시킨 후, 노인·어린이·여자·청년으로 분류하여 인민군을 찾아내라며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주민 40여 명을 결박하여 안도 선착장으로 끌고 가 그 중 11명을 처형했는데, 나중에 조사한 결과 이들은 대부분 좌익과 관련이 없는 민간인들이며 심지어 우익 성향이 강한 사람들도 포함되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아픈 기억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1950년 7월 21일 미군전투기의 오폭으로 이야포 앞바다에서 피난민 350명을 태운 배가 침몰하여, 그 중 150여 명이 사망했다. 더 끔찍한 일은 흔적을 없애기 위해서인지, 시신들을 매장하지 않고 배에 모아 놓고 기름을 부어 태워 버렸다는 것이다. 1995년 7월에는 원유를 싣고 가던 시프린스호가 태풍 페이에 떠밀려 무인도인 작도와 충돌해 좌초되면서, 많은 양의 기름이 바다로 유출되었다. 그로 인해 풍부한 수산자원과 다양한 농산물로 나름대로 넉넉한 생활을 했던 안도 주민들은 삶의 모든 것을 순식간에 잃었다. 유독 아픔이 많았던 섬, 안도의 앞날에 이제는 웃음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섬의 당산제가 TV에 소개될 정도로 우상숭배가 심했던 이 섬에 1948년 안도교회가 설립되었다. 당산 바로 아래 교회가 건축되면서 수없는 방해를 받기도 했지만, 6·25전쟁 기간에는 피난민들이 몰려와 한 때는 200여 명의 성도들이 나왔다고 한다. 지금은 자립교회로 성장과 부흥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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