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언 목사의 섬마을 순례]

‘금오도’(金鼇島)는 ‘황금 거북(자라)의 섬’이라는 뜻을 가졌다. 또 숲이 우거져 검게 보인다고 해서 ‘거무섬’이라고도 불린다.

금오도는 주변 섬에 비해 넓은 면적(870만평)과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갖고 있지만, 사람이 들어와 산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지금으로부터 120년 정도이니 말이다. 그 전에는 사슴목장으로 이용되었고, 산에 무성히 자란 아름드리 나무들은 육지로 실려 나가 목재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조선말엽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당시에 금오도의 나무를 베어가 궁궐의 건축재로 이용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봉산’이란 출입·벌채를 금하는 것을 말하는데, 1885년에 봉산이 해제되자 당시 관의 포수였던 박 씨가 아들 삼형제를 데리고 섬에 들어가 두포마을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1985년에 이를 기념하는 ‘금오도 개척 100주년 기념비’가 바로 이 마을에 세워져 있다. 1970년대만해도 2만여 명의 주민들이 반농반어로 생계를 유지했고 초등학교도 6개나 있었지만, 1990년대 들어 마땅한 소득이 없고 인구가 감소하여 현재는 40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열풍처럼 불고 있는 ‘걷기 여행’의 바람이 신비의 섬인 금오도에도 몰아치고 있다. 함구미와 직포 간을 잇는 길이 8.5㎞의 ‘비렁길’이 빠르게 유명세를 타고 있는 것이다. 낭떠러지 절벽 위에 만들어진 길이라 표준말로는 ‘벼랑길’이지만, 여수의 지방사투리인 ‘비렁길’로 이름이 붙여졌다. 제주에 올레길, 지리산과 북한산에 둘레길, 청산도에 황톳길이 있다면 전남 여수에는 금오도 비렁길이 있다.

2010년 7월 처음 개방된 이후 비렁길은 2011년 한 해 동안 탐방객 30만명을 불러들이며 ‘한국관광으뜸명소’로 선정되기도 했다. 비렁길은 가파르지 않고 오르내리는 폭이 적기 때문에 온 가족이 3시간이면 완주하며 ‘느림의 미학’을 즐길 수 있다. 자연생태탐방에 알맞도록 군데군데 전망대와 쉼터 등도 갖춰져 있다. 남해안에서 이미 오래 전 사라진 토속 장례문화인 ‘초분’을 재현해 학생들의 교육 효과도 높이고 있다.

2차 비렁길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수면으로부터 평균 100여m 떨어진 해안 절벽 위에 1.2m 폭으로 만들어졌다. 1구간보다도 더 빼어난 경관과 탁 트인 전망이 조화를 이룬다. 여기에 더 추가된 3개 코스(10㎞)는 붉은 동백나무터널과 굽이굽이 벼랑을 에워싸고 도는 절벽과 해안을 지나게 되며, 걸어서 3시간 30분가량 걸린다. 

특히 심포∼장지(3.3㎞·1시간) 구간인 제5코스는 절벽에 붙어 있는 시루떡 모양의 납작한 돌들이 금방이라도 굴러 떨어질 것 같은 아찔함을 선보인다. 푸르른 남해안 바다를 바라보며 절벽 위를 걷는 즐거움은 생각보다 훨씬 크다. 여수시 관계자는 “전 구간을 하루에 걷기는 다소 무리가 있다”며 “1박 2일 일정으로 천천히 걷는 게 건강에 좋다”고 권한다.

우학리는 금오도의 중심지이자 여수 남면의 소재지이다. U자형으로 움푹 들어간 천혜의 양항인 우학리는 마을로서 안성맞춤이며, 선착장 풍경은 이국적이다. 여남초·중·고등학교를 지나면 몇 그루의 해송이 관광객을 반기는데, 둥치가 수직으로 뻗어 올라 어른 키로 두 길쯤 위에 줄기가 용트림하듯 뻗어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우학리에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우학리교회가 있다. 지역 유지들의 힘으로 설립된 교회이다. 또한 한국인 최초로 목사 안수를 받은 이기풍 목사가 10년간의 제주 선교를 마치고, 전라도 여수 일대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다 마지막으로 부임한 게 바로 이곳이다. 우학리교회 5대 교역자로 사역하며 신사참배를 반대하던 이기풍 목사는 일제에 의해 투옥되고 고문당하며 여기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헌신으로 금오도에는 12개의 교회가 있다고 하니 놀라울 뿐이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