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신앙 요람, 긍지의 역사 이어가다

화촌교회와 송기명 장로

애국신앙의 요람으로 초창기 역사를 장식한 서천 화촌교회.
애국신앙의 요람으로 초창기 역사를 장식한 서천 화촌교회.

금당교회와 같은 서천군 화양면에 소재한 화촌교회는 비슷한 연배에다 독립운동에 앞장선 기억을 지녔다는 공통점이 있다. 화양면과 이웃한 한산면 연봉리교회에서 1911년 완포리교회가 분립하고, 이 교회가 1934년 화촌리로 이전하면서 현재의 화촌교회 역사가 이어져온 것이다.

완포리 시절에 교회를 이끌어간 지도자는 김인전이었다. 훗날 목사가 되어 전주서문교회를 담임하며 전주지역 만세운동을 이끌었고, 상해의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현재의 국회의장에 해당하는 의정원장을 지내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생명을 바친 바로 그 인물이다.

화촌교회가 자랑하는 대표적 애국지사인 김인전 목사.
화촌교회가 자랑하는 대표적 애국지사인 김인전 목사.

김인전은 초대 장로로서 완포리교회를 섬기는 한편, 동네에 한영학교를 설립해 겨레의 미래를 지탱해낼 수많은 인재들을 키워내기도 했다.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송기면이었다. 화촌리에서 나고 자란 송기면은 교회와 학교를 통해 구국신앙을 키우다 3·1운동의 격랑기를 맞이했다.

그는 서천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킬 계획을 세우고 자택에서 태극기 200개를 제작하는 한편, 유성열 이근호 임학규 등과 구체적인 모의를 시작했다. 날짜는 3월 29일, 장소는 마산면 신장리로 정했다. 신장리는 서천에서 가장 큰 장이 서는 곳이었다.

송기면 장로
송기면 장로

당일 오전 11시에 드디어 태극기를 손에 쥔 군중들의 봉기가 벌어졌다. 22세의 송기면이 선봉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장터 일대를 행진했고, 인파는 점점 불어 2000여 명에 이르렀다. 장터를 감시하던 일제 경찰들에게도 단연 송기면은 눈에 띄는 존재였고, 결국 그는 유성열과 함께 가장 먼저 연행됐다.

송기면이 잡혀가자 그의 형 송여직이 대신 행렬을 선도했고, 오후 들어 봉기는 더욱 거세졌다. 송여직과 다른 지도자들마자 붙들려가는 상황이 되면서, 군중들의 분기는 극에 달했다. 결국 일경들의 출장소를 습격해 파손하는 지경에 이르러 경찰들이 도망치고, 송기면 등 체포되었던 인사들은 탈출했다. 이 사건으로 송기면은 재판을 받고 1년 6월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1932년에 작성되기 시작한 화촌교회 세례문답자 명부와 학습문답자 명부.
1932년에 작성되기 시작한 화촌교회 세례문답자 명부와 학습문답자 명부.

만세운동이 끝나고 여러 해가 지난 후 완포리에서 화촌리로 교회가 옮겨갔을 때, 송기면은 그의 학문적 스승인 동시에 영적인 스승이었던 김인전처럼 장로로 장립되어 화촌교회를 이끌어갔다. 해방 후인 1953년에는 만세운동을 함께 이끌었던 임학규가 뒤를 이어 장로 장립을 받으며 교회의 발전기가 계속됐다.

임민혁 목사는 성도들을 과거처럼 튼실한 신앙 위에 세우기 위해 매진하는 중이다.
임민혁 목사는 성도들을 과거처럼 튼실한 신앙 위에 세우기 위해 매진하는 중이다.

1961년 시작된 교회당 신축공사는 화촌교회의 전성기를 알리는 상징과도 같은 일이었다. 당시에 남녀노소 성도들이 일광산에서 돌을 운반하여 건축한 예배당의 모습은 1986년 증축이 이루어진 후 현재까지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증축한 예배당의 헌당식이 열릴 무렵에는 화촌교회의 장년 성도가 128명, 주일학교 학생이 108명에 이를 정도로 탄탄한 교세를 자랑했다.

그 사이 조남열 황재규 양승만 조성영 홍은표 장활광 김세중 안영규 지천석 이재은 안기훈 등 여러 교역자들이 부임해 성도들을 돌보았다. 제13대인 임민혁 목사는 지난해 부임해, 기도생활에 초점을 둔 목회를 펼치는 중이다. “귀농 귀촌하는 이들을 교회에서 앞장서 받아들이고, 성도들이 예배의 자리를 흔들림 없이 지키도록 지도하는 일에 힘쓰고 있습니다.”

1980년대에 예배당 증축공사를 위해 함께 일하는 화촌교회 교우들 모습.
1980년대에 예배당 증축공사를 위해 함께 일하는 화촌교회 교우들 모습.

교세나 위상이 예전과 같지 않지만 송기면 장로가 1990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된 일이나, 금당교회와 나란히 총회로부터 ‘3·1운동 참여교회’로 지정받은 일 등은 화촌교회의 자긍심을 크게 북돋웠다. 앞으로도 소중한 역사를 잘 보존하고 선배들의 정신을 열심히 계승하겠다는 것이 임 목사와 성도들의 다짐이다.
정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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