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언 목사의 섬마을 순례]

통영의 남쪽 바다에 위치한 사량도는 윗섬(상도)과 아랫섬(하도), 두 개의 섬이 동서로 나란히 누워있는 형세이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의 한 가운데를 차지하며, 통영 고성 남해 등 경상남도 3개 시군에 둘러싸여 있다. 이런 지리적 중요성 때문인지, 고려시대부터 수군이 주둔하며 전략적 해상 요충지로 활용됐다.

섬의 면적은 10.798㎢, 해안선 길이가 17.5㎞에 이른다. 두 섬은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데, 이 해협은 아무리 강력한 태풍이 불어도 배들을 안전하게 정박할 수 있는 천혜의 항구 역할을 하며, 미역을 비롯한 여러 가지 양식작업이 이루어지는 터전이기도 하다.

사량도라는 이름의 유래는 섬의 옥녀봉에 담긴 비련의 ‘사랑’ 이야기가 ‘사량’이라는 이름으로 변천되었다는 설, 이 섬에 다량 서식하는 뱀(蛇)에서 비롯되었다는 설, 섬의 전체적인 형상이 뱀처럼 기다랗기 때문이라는 설 등으로 다양하다.

상도 금평리 진촌마을과 하도 읍덕리 덕동마을을 연결하는 연도교는 2015년에 개통됐다. 다리의 총연장이 1465m에 이른다. 연도교 개통으로 두 섬의 주민들이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생활의 불편도 덜게 됐고, 상도의 지리망산 못지않게 하도의 칠현산도 많은 등산객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특히 지리망산은 국내 100대 명산 중 하나로 꼽히며, 모험과 낭만을 체험할 수 있는 여행지로 사랑받는다. 그래서 사량도를 방문하는 사람 10명 중 8명은 지리망산에 산행하러 온다는 말도 있다. 산행의 절정은 3월 중순부터 4월까지인데 주말이면 무려 7000명 가까운 인파가 몰린다.

가장 인기 있는 등산 코스는 돈지항에서 출발해 지리망산 볼모산 가마봉 옥녀봉 등 상도의 4개 봉우리를 모두 통과하는 8km 종주코스로 보통 5시간이 걸린다. 군대 유격훈련장을 연상케하는 낭떠러지와 급경사가 이어진다.
또한 해발 400m의 봉우리들을 연결한 출렁다리에다 90도 경사에 가까운 수직 철계단까지 난코스가 많아, 초행자들 중에서는 등산 중 울음을 터뜨리는 경우도 빈번하다는 이야기가 나올만큼 지리망산은 작지만 매서운 ‘악산’으로 명성을 지녔다.

고려 말에는 최영 장군이 남해안의 왜구를 토벌하기 위해 사량도에 진을 쳤고, 또한 그의 공을 기리기 위한 사당도 이 섬에 세워졌다. 조선 중종 39년(1544년) 4월에는 일본인들의 약탈사건인 ‘사량진왜변’이 벌어진 역사도 있다.

임진왜란 중에는 이순신 장군이 하도에서 군사들을 쉬게 하며 <난중일기>를 쓴 후, 이튿날 당포해전에서 큰 승리를 거둔 역사도 전해진다. <난중일기>에는 특히 충무공과 사량만호 이여염이 자주 접촉한 기록과 함께, ‘사량’라는 명칭이 무려 14회나 등장한다. 상도 진촌마을의 객사터와 옥터, 하도의 봉화터는 옛 시대의 자취들을 보여준다.

사량면사무소와 사량중학교 곁에는 ‘엔젤 3호’라는 이름의 배 한 척이 전시되어 있다. 엔젤호는 1970년대 남해를 주름잡던 우리나라 최초의 쾌속여객선들이다. 하지만 경영난과 1980년대에 발생한 두 차례의 대형사고로 사라지고 말았다. 상습적으로 등장하는 ‘바다의 무법자’, 즉 안개로 인한 해난사고가 잦았던 이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을 추모하는 듯, 엔젤 3호는 추억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사량도에 가장 먼저 설립된 교회는 사량교회이다. 1913년 호주 출신 선교사이자 의사인 테일러 박사가 돛단배를 타고 다니면서 사량도 한산도 욕지도 노대도 등에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다고 한다. 그 후 금평마을에 사량제일교회가, 내지에 돈지성광교회가 각각 세워져 총 3개 교회가 사역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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