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언 목사의 섬마을 순례]

통영항에서 약 14㎞ 떨어진 거리에 있는 비진도는 면적 2788㎢, 해안선 길이 9㎞에 이르는 섬이다. 내항마을과 외항마을 등 두 개의 동네에 2020년 기준으로 108가구 184명의 주민이 산다. 주위에는 매물도, 용초도, 한산도 등이 있다.

보배에 비길 만한 풍광을 품고 있다 하여 이름 붙여진 ‘비진도’는 하늘에서 내려다봤을 때 8자 혹은 모래시계와 비슷한 모양으로 생겼다. 현지 주민들의 설명에 따르면 자연경관도 말할 수 없이 아름답거니와, 섬 일대의 풍부한 수산물 역시 보물 같은 존재이기에 비진도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그 외의 설도 있는데,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왜적과 전투를 벌여 승리한 보배로운 곳이라는 뜻에서 비진도라 했다는 것이다. 비진도의 다른 이름은 ‘미인도’이다.

여객선을 타고 비진도에 도착하면 먼저 내항마을에 내린다. 방파제를 나오면 바로 마을이 시작된다. 오른쪽으로 파란 대문으로 된 해녀민박집이, 그 바로 위에는 비진도교회의 잘 지어진 예배당이 있다. 교회당 한 쪽 끝에 위치한 녹슨 종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왼쪽으로는 2층짜리 마을회관이 서있다. 그 맞은편 경로당 앞에는 3기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셋 중 가운데에 위치한 ‘위령탑’은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이다. 안내판에 따르면 6·25와 월남전에 참전한 총 9명의 내항마을 출신 전몰용사들을 기리기 위해 1918년 설치한 탑이다. 기단에는 전사자들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이 탑의 건립비용은 1981년 전국풀베기대회에서 공동우승하며 받은 상금으로 충당했다고 한다.

내항마을은 소박한 멋을 지닌 동네이다. 내항마을에서 해안을 따라 외항마을까지 이어진 길이 ‘비진도길’이다. 두 마을 사이는 걸어서 약 30여 분이 걸린다. 비진도길에는 아름드리 상록수와 키 작은 팔손이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찬 ‘어부림(魚付林)’이 자리잡고 있다. 뙤약볕을 피해 잠시 쉬어가기에 안성맞춤이다. 그저 먼발치에서 바라만 봐도 괜스레 기분이 좋아질 성 싶은 숲이다.

‘어부림’은 바닷가에 조성하는 나무와 숲을 말한다. 거친 바람을 막는 방풍림 역할도 한다. 특히 이 숲의 팔손이나무 군락지는 현재 천연기념물 제63호로 지정될 만큼 생태적 가치가 높다. 넓은 잎사귀가 손바닥을 닮았는데, 손가락이 여덟 개 혹은 아홉 개다. 이 팔손이나무의 북방한계선이 바로 비진도라 한다.

비진도해수욕장은 경남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해수욕장이다. 태평양 쪽에서 밀려오는 큰 파도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동쪽은 몽돌 밭으로 이루어지고, 파도가 거의 없는 서쪽에는 모래밭이 생겨나 절묘한 자연의 조화를 이룬 덕이다.

해수욕장에 비해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비진도 여행의 절정은 뭐니 뭐니 해도 수포마을의 선유봉(313m) 정상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는 전망이다. 비진도 내항에서 내려, 대동산 능선을 따라 7㎞가량 걸어 오르면 선유봉 정상에 오른다. 넉넉잡아 3시간 정도 산행시간이 걸린다. 다소 힘든 산행이지만, 큰마음 먹고 올라가면 탁 트인 전망이 충분한 보상을 해준다.

비진도도 여느 섬처럼 우상숭배가 심한 마을이었다. 과거에는 1년에 1회씩 승려가 들어와 당산제를 지냈다. 제사 기간에는 두 마을 사람들과 가축의 대문 출입을 일절 금했다고 전한다.

비진도교회는 1965년 설립되었다. 1982년 부임한 김덕조 목사는 2019년도에 은퇴하기까지 38년을 시무하고 원로목사가 되었다. 두 자녀를 마산의 할머니 집에 맡기고 목회를 하였는데, 예배당 건축을 하다가 몸을 상한 적도 있었다. 육지와 비교해 섬 교회 건축에는 예산과 힘이 훨씬 더 많이 든다. 지금은 뜸한 일이 되어버렸지만 한때는 비진도에 건축된 교회 수양관 시설이 여름이면 육지 교회들의 수련회 장소로 각광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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