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언 목사의 섬마을 순례]

고군산군도의 중심을 이루는 신시도는 면적 4.25㎢, 해안선의 길이 16.5㎞에 이른다. 일대에서 가장 큰 섬인데, 주변의 섬들이 바람을 막아주어 아늑한 느낌을 준다.

예전에는 ‘지풍금’ 또는 ‘신치’라고 부르다가, 1910년 한일병탄 후 왕사(王師)로 있던 전일제 선생이 왜인을 피해 이 섬에 들어와 은거하면서부터 ‘신시도’ 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신시도라는 이름에는 새로운 것(新)을 받든다(侍)는 의미가 있다.

지난 2005년 새만금방조제 공사 덕분에 신시도는 비응도, 야미도와 함께 육지가 됐다. 예전에는 군산 내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야미도를 거쳐 신시도에 갈 수 있었다. 지금은 차량으로 군장산업단지와 비응도를 거쳐 야미도를 지나면 새만금 배수갑문을 만나는데, 그곳이 바로 신시도이다.

배수갑문은 널따란 광장이다. 전망대 등과 함께 신시도에 새로운 풍경을 그려놓았다. 특히 배수갑문은 최고 수준의 토목기술로 세계 최장의 방조제를 이루는 역할을 하면서, ‘바다 위 만리장성’이란 별명을 안겨 주었다.

20년 가까운 공사를 통해 완성된 새만금 방조제는 총연장 33.9㎞에 이른다. 네덜란드 주다치 압슬루트 방조제(32.5㎞)보다 약 1.4㎞ 더 길어, 기네스 월드레코드에서 세계 최장의 방조제로 공인한 바 있다. 비록 거대한 땅을 얻는 대신 생명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새만금이 세계 간척역사에 한 획을 그은 역사적 현장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현재의 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신시도 입구에서 마을까지 제법 먼 거리였다. 걸어서 가면 1시간은 족히 걸린다. 마을정보센터 옆에 세워진 안내도를 보면 이 섬이 참 희한하게 생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산 양쪽에 걸쳐 깊게 만입한 곳에 마을이 포근히 감싸 안기듯 자리하고 있다.

마을 가까이에 섬을 남북으로 양분하는 두 봉우리가 있는데, 신시도는 물론 고군산군도의 주봉인 남동쪽의 월영봉(198m)과 북서쪽의 대각산(187m)이 그것이다. 최치원의 설화에도 중요하게 등장하는 존재들이다.

신라 말 대학자이자 당대의 명필로 명성을 떨친 고운 최치원은 옛 옥구군(현재 군산)에 서원을 차리고 한 동안 운영했다. 특히 신시도의 절경에 반해서, 풍선(風船)을 타고 이곳에 와 잠시 머무르기도 했다고 전한다. 또한 월영봉을 월영대라 칭하고 돌담을 쌓아 임시 거처를 만들었는데, 이곳에서 시와 글을 읽는 소리가 중국까지 들렸다는 전설이 있다.

대각산 정상에는 군산시가 지난 2004년 설치해 놓은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서 선유도와 신시도를 감싸는 횡경도 그리고 바다가 어우러지는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예전에는 교통이 불편해 낚시꾼들 외에는 섬을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요즘에는 비경을 즐기려는 관광객들과 함께 멋진 등반코스를 찾는 등산객들도 적잖게 모여든다.

신시도교회는 1959년 설립되었다. 여느 섬 교회들처럼 목회자 공백이 많은 곳인데, 1990년대에 장동석 목사가 시무하면서 장년 성도 70명에 주일학교 학생 20명이 넘는 부흥기를 이루기도 했다.

신시도교회를 섬기는 박병근 집사와 아내 아르세니아도 꽤 유명한 존재들이다. 필리핀 시의원 집안의 일곱째 딸이었던 아르세니아는 단기선교 차 필리핀에 왔다가 자신에게 반한 박병근 집사의 열정적인 구애를 받아들여 한국에 왔다. 결혼 당시만 해도 외딴 섬이었던 신시도에 정착하여 민박과 고기잡이에다, 초등학교 학생들의 영어선생님 심지어 영화배우로까지 활약했다. 이런 이야기가 KBS <인간극장>에 다문화가족의 성공기로 소개되며 한동안 유명세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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