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언 목사의 섬마을 순례]

말도는 면적이 0.36㎢, 둘레가 3km의 작은 섬이다. 인구는 12가구에 21명이 살고 있다. 군산으로부터 남서쪽으로 약 40㎞ 떨어진 섬으로, 고군산군도의 끝에 위치해 말도 혹은 ‘끝섬’이라고 불린다.

작은 섬이지만 주변 해역이 황금어장인데다, 서해상을 따라 올라가는 뱃길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말도에는 고군산군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등대가 들어서 있다. 고려시대 고군산군도가 지도에 처음으로 표시됐을 무렵만 해도 무인도였으나, 조선시대 중엽 한양에서 심판서라는 사람이 귀양을 오면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고 전해온다.

여객선을 타고 말도에 다다르면 가장 먼저 반겨주는 게 기암들로 장식된 해안절벽이다. 섬 남동쪽 해안절벽 1만 6190㎡는 지난 2009년 천연기념물 제501호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대규모 지각운동에 의해 지층이 큰 물결모양으로 구부러져 있는 형태로, 주변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습곡구조의 바위는 마치 인상을 쓰고 있는 듯 보이는 형상이다. 또 바위가 파도 치듯이 휘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말도에는 여기 말고도 습곡지형이 여러 곳에 분포되어있다. 약 5억 9000만 년 전인 고생대 선캄브리아기의 지질구조를 관찰할 수 있어서, 뛰어난 학술적·교육적 가치로 향후 해양 관광자원으로 활용될 것이 기대된다.

산길을 타고 10분 정도 걸어 언덕에 올라서면 알록달록한 지붕의 조그마한 어촌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바다만 아니라면 영락없는 산촌의 형세이다. 경로당과 마을회관을 빼놓으면 대부분의 집들이 노후된 상태이다. 선착장에서 올라오는 마을 입구에 파출소가 있고 그 맞은편에 옛 초등학교 분교가 덩그러니 서있는데, 이 건물을 군산대학교에서 매입하여 연구목적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바로 뒤에는 푸른 제복을 연상하게 하는 건물이 있는데 해군에서 사용하던 시설이다. 이 조그만 공간에서 마을 학교 군부대가 공존하며, 물과 전기를 어떻게 해결했을지 궁금하다.

섬 안에 영신당(靈神堂)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당이 있었는데, 말도에 처음 들어왔다는 심판서라는 인물과 관련이 있는 곳이다. 과거에는 이곳에서 일 년에 두 차례 돼지를 잡아 당산제를 지냈다고 한다. 지금은 사당이 무너졌고, 그 흔적만 남아있다.

무속신앙이 사라진 섬에는 교회가 든든히 서있다. 말도교회를 세운 공로자는 한 여성 전도사이다. 신안 증도의 문준경 전도사와 함께 ‘섬 선교의 어머니’라 불리는 추명순 전도사가 그 주인공이다.

추명순 전도사는 1908년 3월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15세에 시집을 갔지만, 바람난 남편 때문에 신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26세 때 어느 할머니로부터 ‘예수 믿으면 다 해결된다’는 말을 듣고 열심히 교회에 다니며 전도도 하는 중에, 남편이 집으로 끌고 가서 ‘예수 귀신에게 미쳤다’면서 무려 10시간이나 매를 때렸다. 죽음 직전에서 간신히 살아난 후, 집에서 쫓겨난 그는 군산에서 당대의 부흥사 김용은 목사를 만나 큰 은혜를 체험한다.

김 목사의 추천으로 추 전도사는 당시 복음의 불모지였던 말도에 들어가 우상과 미신에 빠진 주민들을 전도했다. 당시 여자들은 부정 탄다며 배에 잘 태워주지 않았기에, 섬에 한 번 드나들기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무녀 점술가들은 물론 섬 주민들까지 가세한 온갖 핍박에도 불구하고, 그는 선유도 장자도 방축도 등 고군산군도의 모든 섬들을 돌며 복음을 전해 8개 교회를 설립하거나 폐쇄된 교회를 재건했다. 오늘날까지 그를 기억하는 이들은 ‘섬마을 사랑의 어머니’ 혹은 ‘고군산군도 한 알의 밀알’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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