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언 목사의 섬마을 순례]

식도는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에 속한 섬으로, 106가구에 152명이 거주한다. 본도인 위도로부터 동북방 2km 지점에 위치한다.

‘밥섬’이라고도 불리는데, 고슴도치 모양의 위도 곁에 위치한 이 식도가 마치 고슴도치의 먹이 같은 형세를 가졌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밥섬’이 ‘식도’로 개명된 것은 일제강점기 때였다고 한다. 동서의 2개 섬이 하나로 연결된 식도는 기복이 큰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해안을 따라 가면 해식애(침식과 풍화에 의한 낭떠러지)가 많이 발달되어 있다.

북쪽과 남쪽에 동시에 배를 댈 수 있어 어업에 관한 한 천혜의 섬이다. 큰 어선들이 많아 근처 바다에서 어업 활동이 매우 활발하다. 포구에 정박한 고깃배들의 모습은 마치 여러 개의 봉우리가 서로 연결된 독특한 섬 풍경을 연상케 한다.

요즘에는 식도의 경기가 위도보다 더 낫다는 말도 있다.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이 재미있다. 위도 주민들이 방파제로 고슴도치의 입을 막아버리는 바람에 밥을 먹지 못하니, 식도에 밥(재물)이 쌓여 간다는 것이다.

예전에 부안군 일대에서 손가락에 꼽힐 만큼 큰 부자가 식도에 살았다고 전한다. 이름은 글쎄, 그냥 송부자라 부른다. 일제강점기에 무역으로 큰돈을 벌었다. 칠산바다에서 잡은 민어를 일본으로 수출했던 모양이다. 얼마나 돈이 많았던지 갈퀴로 돈을 긁고, 독안에 넣어 오래 묻어두는 바람에 곰팡이가 핀 돈을 마당에 멍석을 깔고 그 위에 펼쳐 말리기도 했다 한다.

그런 송부자에게 가장 큰 즐거움은 낙조를 지켜보는 것이었다. 해질 무렵 머슴에게 유성기를 짊어지게 해서 앞세우고, 왕등도가 바라다 보이는 쪽의 해안가 바위로 향하였다. 그 바위에 앉아 유성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함께 석양을 감상했단다. 그 바위를 지금도 식도 사람들은 ‘송씨바위’라고 부른다. 어쩌면 송부자는 식도의 풍요로운 과거를 그리워하는 상징과도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20여 년 전 발생한 서해훼리호 침몰사건은 위도 뿐 아니라 식도에도 큰 피해를 안겼다. 당시 사고에서 37명이나 되는 식도 주민들이 한꺼번에 죽음을 당한 것이다. 식도 선착장은 그 슬픈 사연을 간직한 장소이다.

선착장에서 바라보면 방파제를 기준으로 좌우에 마을이 형성되어있는 형세이다. 어망을 수리하고 정리하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발견한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어업에 종사하는데 봄에는 새우잡이, 여름과 가을에는 멸치잡이를 하며 살아간다. 조기어장도 근접한 곳에 있어서 식도 주민들에게 높은 수익을 안겨주었는데, 점점 조기 어획량이 줄면서 한때 위기가 찾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새우와 멸치에다 키조개 등이 새로운 수익원이 되면서 경제적 안정을 회복할 수 있었다.

식도 안에 딱히 볼거리가 많지는 않지만, 가막산 정상에 설치된 전망대에 오르면 섬 전체는 물론이고 인근 바다 풍경까지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이 일대에 총 3㎞의 등산로가 개발되어 있는데, 넉넉잡고 1시간이면 완주할 수 있다. 마을 역시 크지 않아 금세 한 바퀴 다 돌아 볼 수 있다. 포구 왼쪽에 있는 초등학교 분교의 역사는 70년을 넘었다. 개교 60주년 기념비 등 여러 조형물들이 교정을 장식한다.

식도교회는 올해로 67주년을 맞이했다. 좋은 멸치어장을 꾸려나가는 박정근 장로가 은퇴하고, 대신해서 지난 5월 19일 임직식을 통하여 새로 장로를 세웠다. 이날 우태복 선교사 파송식과 예배당 헌당식도 함께 열렸다. 성도 숫자는 30명에 불과하지만, 총 16곳에 선교비를 보내면서 자립하는 교회이다. 2012년 부임한 박영빈 목사는 건강한 리더십으로 목회를 잘 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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