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민 목사의 상도동 이야기]

사람을 뽑을 때 4가지를 본다는 ‘신언서판(身言書判)’의 유래는 중국 당나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 태종은 기득권 세력을 견제하고 널리 인재를 등용하고자 과거제도를 실시했다. 과거제도는 왕의 권한을 강화하고, 인재를 얻을 수 있는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었다. 당나라는 과거제도를 엄격하고 철저하게 실시하여 천하의 인재들을 모았다. 그러나 과거에 급제한 인물들을 바로 등용하지 않았다. 바로 ‘외모’(身) ‘언변(言)’ ‘글씨(書)’ ‘판단력’(判) 등 네 가지 선정기준에 따라 평가를 한 후에 관리로 임용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고려 광종 때부터 과거제도를 실시했고. ‘신언서판’은 인물평가의 기준으로 널리 쓰였다. 과거 어떤 기업에서는 신입사원을 뽑을 때 아예 관상을 보는 사람을 면접관으로 두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사실 지금도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뽑을 때나, 교회에서 교역자를 청빙할 때 ‘신언서판’은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런데 신언서판 중에서 오늘날 제일 약화된 것이 있다. 요즘처럼 외모를 중요시 했던 적이 있던가? 이 시대만큼 말 잘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적이 있는가? 지금처럼 무엇인가를 빨리 판단하고 결정한 적이 있던가? 그러나 글씨만큼은 결코 나아지지 않았다. 다른 것은 모두 최첨단을 걷고 있는데, 글씨는 오히려 점점 퇴보하고 있다. 얼마 전에 자녀들이 쓴 시험지를 본적이 있는데 그 상형문자(?)를 해석하여 점수를 주시는 선생님들이 더 대단해 보였다. 다들 말은 잘하는데 글로써 표현하라면 참 어색해진다.

여기에 정면도전한 단체가 있다. 탁월한 외모도 필요 없다. 현란한 말솜씨도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빠른 판단력도 중요하지 않다. 다만 글씨로 모든 것을 잘 표현하도록 도와준다. 바로 ‘청현재이 캘리그라피 문화선교회’(대표:임동규)이다. 이 단체와 정기승 장로(상도제일교회 은퇴)의 만남은 말 그대로 환상의 조합이었다. 평소에도 글씨와 수묵화에 관심이 많고, 국선작가로까지 활동했던 그에게 캘리그라피와의 접목은 커다란 시너지효과를 발휘했다.

상도동 지역주민들의 윤택한 문화적 삶을 위해 2015년에 상도제일문화원이 문을 열었는데, 여기에 붓글씨교실에 이어 최근에는 붓펜 힐링프로그램을 접목하는 과목을 개설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글로 쓰게 하고, 그것을 통하여 치유를 경험하는 프로그램이다. 어떻게 글이 치유로 나타나는가? 이해가 안 될 수 있지만 그 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가능하지 않겠는가?

청현재이 캘리그라피는 사회 여러 방면에서 즐겨 활용되고 있는 캘리그라피 글씨를 성경말씀에 접목하여, 말씀 묵상으로 인도하는 사역을 기본으로 삼은 기독교문화단체이다. 새삼스레 글씨쓰기에 도전한다는 것이 두려울 수도 있지만, 교본을 바탕으로 따라하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정성껏 글씨를 쓰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더욱 감사한 것은 글씨가 딱딱하지 않고 그림 그리는 것처럼 재미있다는 점이다. 그 묘한 매력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상도제일문화원에서 초등학생부터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가장 인기가 높은 과목이 바로 화요일과 토요일에 정기승 장로가 진행하는 글씨프로그램이다. 올 가을에는 추석이 지난 후 10월 11일부터 7주간 붓펜 힐링프로그램을 시작한다.

▲ 담임목사의 설교 요지를 한 폭의 수묵화와 함께 담아 엘리베이터에 전시한 정기승 장로의 작품.

그런데 글씨가 목회에도 도움이 된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정 장로는 시무 현역에서 물러난 은퇴장로지만 지금도 담임목사와 교우들에게 큰 도움을 준다. 주일설교를 듣고 매주 그 메시지를 요약하며 거기에다 수목화까지 덧붙여, 우리 교우들이 애용하는 엘리베이터 안에 걸어둔다. 설교를 듣고 나면 대부분 그 내용을 잊어버리기 쉽지만, 정 장로의 작품을 통해 한 주간 엘리베이터에서 다시금 그 말씀의 요지를 생생히 곱씹을 수 있다. 필자인 나도 감동을 받는데, 성도들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담임목사의 긴 설교를 두 줄의 글로 정리하고, 아름다운 그림까지 넣어서 표현해주시는 정 장로님이 내게는 두 말할 필요 없는 든든한 후원자이다. 그 동안의 작품을 모아 올해가 가기 전에 ‘설교 글씨전’을 열려고 한다. 2018년 첫 주부터 지금까지의 설교요지들이 솔직히 나도 궁금하다. 덧붙여 정기승 장로를 다른 교회에 빌려드릴 수는 없기에 이런 제안을 하고 싶다. 교회 설립일에든지, 중요한 행사나 절기에든지 청현재이(070-7118-6161)의 말씀선교사들을 초청해보라는 것이다. 글씨가 목회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수십 명의 말씀선교사들이 주일에 교회나 행사지를 방문하여 전 성도들에게 각자 좋아하는 말씀과 가훈을 써주는데, 그것을 받고 흐뭇하게 뒤돌아서던 성도들의 모습과 아직 무슨 뜻인지도 모르지만 예쁜 글씨를 받고 기뻐하던 두 아이의 모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이미 장충교회, 계산교회, 수원제일교회, 인천제이교회, 의정부중앙교회 등에서 이 행사가 열렸고 8월 19일에는 경산중앙교회서 개최된다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는 행복이 어떤 것인지 알기에, 그 교회 성도들의 얼굴에 번질 행복한 미소가 상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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