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왕 목사의 아름다운 자연사진 이야기] (5)칼라와 흑백-소통(疏通)의 다리

요즘에는 기술이 발달해 좁은 자동차 안에서 냉난방은 물론 영상과 음악 등으로 휴식을 즐기는 것이 가능하다. 작은 스마트폰 하나만 가지고도 영상통화, 인터넷, 비디오, 사진, 음악, 교육, 독서, 문서 작성, 사진 촬영과 저장 등이 모두 가능하다. 그 가운데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바로 사진기능으로, 스마트폰만으로도 소형 카메라 못지않게 컬러풀한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구태여 짐스러운 카메라 장비들을 구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특히 예전과는 달리 요즘에는 흔히 볼 수 없는 흑백사진을 쉽게 연출할 수 있다는 것도 스마트폰이 가진 커다란 장점 중 하나이다. 물론 컬러사진이 대세가 된 것이 오래이지만, 오늘 보여드리는 사진처럼 흑백사진도 컬러사진 못지않게 색채와 명암 대비를 통해 아름다운 사진으로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을 독자들은 발견하게 될 것이다.

과거에는 유럽여행하면 대부분 동유럽 서유럽 북유럽 등지가 각광을 받아왔지만,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해체된 이후 문을 연 발칸반도 여행이 최근 들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발칸반도 남쪽에 위치한 보스니아의 헤르체고비나(Bosnia Herzegovina) 마을을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다. 예전 통계를 보면 과거 보스니아의 인구는 대략 400여만 명으로 그 가운데 무슬림이 44%, 세르비아인이 33%, 크로아티아 인이 17%를 차지했다고 한다. 특히 무슬림 문화유산은 전적으로 터키의 영향을 받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오늘 보여드리는 사진은 ‘모스타르(Stari Most)’로, 1566년 오스만튀르크가 이 지역을 점령했을 당시 9년간에 걸쳐 건설한 폭 5m, 길이 30m, 높이 24m의 아름다운 아취형 다리이다. 다리 아래로는 알프스에서 발원하여 아드리아해로 흘러가는 장장 225km나 되는 네레트바(Neretva)강이 관통하는 지역이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의 단초가 되었던 역사를 가진 이 지역에는 ‘유럽의 화약고’라는 별명도 있다. 서로 적대적이 되기 쉬운 여러 문화와 종교와 인종이 함께 섞여 살고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 발발해 3년 이상 계속된 보스니아 내전은 2차 세계대전 이래 유럽에서 일어난 가장 참혹한 전쟁으로, 단지 종교와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10만 명 이상이 학살되고, 난민수가 220만 명에 이르는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 그리하여 전쟁 전 460여만 명에 이르던 인구가 이후 380여만 명으로까지 줄었을 만큼 전쟁의 상처가 매우 컸다.

마을 곳곳에서는 보스니아 내전 당시 총상이 남긴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사람들은 그 전쟁으로 자신들의 지역이 유럽에서 가장 낙후하게 된 데 대해 깊이 후회한다. 여전이 서로 다른 종교와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지만, 이제 그들은 더 이상 갈등하지 않고 ‘모스타르’ 다리를 오가며 소통하고 평화롭게 살고 있다. 지금의 다리는 보스니아 내전이 종식된 이후 유엔과 유럽 각국의 도움으로 2005년 복원된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첨예한 갈등을 극복한 상징으로서 ‘모스타르’ 다리는 2005년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제는 그 ‘모스타르’ 다리를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구름처럼 몰려온다.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붐비는 바람에 바닥에 깔아 놓은 몽돌이 반들반들하게 윤이 날 정도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갈라진 남북한은 단지 이데올로기의 차이 때문에 보스니아 내전보다 더 끔찍한 한국전쟁을 겪었으면서도 여전히 서로 대치하는 상황이다. 현 시점에도 언제 겨레가 말살될지 모르는 핵전쟁 위기의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어서 빨리 우리나라도 이 위기를 극복하고, 모스타르 다리처럼 휴전선을 넘나들면서 동족 간에 서로 소통하며 평화를 이루는 날이 오기를 기도하는 마음이다. 그 마음을 품고 ‘모스타르’ 다리 사진을 올린다. 아마도 그 날이 오면 지금의 휴전선도 모스타르 다리처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고, 전 세계에서 이를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구름처럼 몰려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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