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목사(경일노회 직전노회장)

용서하고 화해할 때 상한 감정이 치유받게 된다
예수의 상처로 인해 치유받는 우리, 사랑 안에서 자라고 사랑이 우리 안에서 성장해야 한다

▲ 김경수 목사(경일노회 직전노회장)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 하다보면 나오는 마음의 표현이 있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다는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람이 말한다. 자신도 누구에게 상처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낸다. 그러는 사이에 대화의 폭은 상한 감정, 상처로 인한 분노, 자신의 억울함으로 바꾸어져서 상처의 현장이 되고 마는 것이다.

언제부터 우리는 상처라는 단어를 끄집어내게 되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농경사회를 지나고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된 것이 의식주의 문제이다. 의식주의 문제가 해결된 이후에 삶의 질은 아주 좋아졌다. 그때 사람들은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과거에 있었던 상한 감정을 이끌어 낸 것이다. 그 동안 억누른 상한 가정을 이끌어 내다보니까 자신의 감정의 문제를 터트리면서 상처로 인하여 자존감이 낮아진 것이다. 이것이 상한 마음이다.

상한 감정의 치유

1992년 데이빗 A. 씨맨즈의 <상한 감정의 치유> 라는 책이 나온 이후 한국 사회는 갑자기 상처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였다. 문제는 이 책을 많은 사람이 읽었지만 마음의 상처를 치유했다고 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았다. 그 동안 억누르기만 했던 마음의 상처만 잔뜩 부풀어 놓은 것이다. 물론 이 책은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살도록 상처를 치유해주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서 상처가 치유되었다고 하는 사람은 못 들어 보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상처에 대한 접근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에서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라고 했다. 여기에 세가지 단어가 나온다. “영과 혼과 몸이다” 인간은 세가지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영적인 부분이다. 영적(pneu’ma-프뉴마)인 부분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부분이고, 둘째로 혼적인 부분 즉 정신적인 (yuchv-프쉬케)부분이다. 셋째는 육체적인(sw’ma-소마) 부분이다. 이렇게 인간은 영적인 부분과 마음과 정신, 육체적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영과 정신과 마음이 상처를 받고 관계가 왜곡되면 상한 감정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런 감정을 치유하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상한 감정을 치유하는 것이다. 상처는 세가지 증상으로 나타난다.

상처의 3가지 증상

1. 자신에게 나타나는 증상

마음의 상처가 많은 사람은 대부분 자존감이 상실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잘 모른다. 여기서 자존감이란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이다.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이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다못해 세상에서 작은 명예만 가져도 사람들은 힘주고 다닌다. 그 이유는 자존감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왕 같은 제사장이며 택함 받은 하나님의 자녀이다(벧전 2:9). 그런데도 상처로 인해서 부정적인 생각과 말이 자신을 지배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자존감이 상했기 때문이다

2. 열등감과 우월감으로 나타나는 증상

우리는 열등감과 우월감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열등감이란 자신이 열등하다는 증상이다. 자신은 다른 사람보다 못하고 비교의 대상이 되어서 자신을 왜곡하는 부분이다. 반대로 우월감은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이다. 이 두 가지 생각은 동전의 양면성과 같은 것이다. 열등감을 느끼는 사람일수록 자기가 가지고 있는 그 어떤 것을 자랑하고 싶어 한다. 즉 자신을 알아 달라는 것이다. 우월감을 가진 사람일수록 자기 자랑을 많이 한다. 만약 이때 자랑을 알아주지 않으면 금세 삐진다. 이런 증상이 마음의 상처에서 일어나는 증상인 것이다.

3. 죄책감과 무감각으로 나타나는 증상

죄책감이란 자기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느끼는 수치심이다. 즉 수치심이란 내가 부끄러워서 못하는 것이라면 죄책감은 내가 잘못되어서 이렇게 되었다고 느끼는 감정이다. 이런 감정이 많으면 죄책감이 무감각으로 행동한다. 그때 어떤 질문을 하면 마음이 무감각해져서 자기의 잘못을 모른다. 그리고 자신이 잘못해 놓고도 자기는 잘했다고 우기는 것이다. 이런 증상이 성격장애를 일으킨다.

우리 주위에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의 절대 다수가 성격장애자다. 마음의 상처가 치유가 안 되니까 결국 성격장애로 변한 것이다. 만약 성격장애가 심해지면 신경증적인 상태로 나타나서 정신병 중상이 나타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신경증과 정신병의 차이 구분은 무엇인가? 한 마디로 신경증은 자기의식과 자기 병에 대해서 인식을 하는 것이다. 반대로 정신병은 자기의식이 없고, 병에 대해서 인식을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증상이 어떻게 성격장애를 일으키는지 살펴보자.

① 시기하는 마음
대부분 성격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의 특징은 시기와 질투이다. 여기서 시기는 자신이 바라는 어떤 것을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을 때 느끼는 감정이고, 질투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애정을 느끼고 있을 때 느껴지는 감정이다. 이 두 가지가 좀 다르다. 이런 감정이 심화되면 미움, 증오심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 교회에서도 보면 마음이 상한 사람들은 자기 입에서 나쁜 감정이 솟구쳐 나와서 욕을 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이것이 더 심해져 내면에서 터져 나오는 것이 분노다. 이런 감정은 아담의 두 아들 가인과 아벨에게 처음으로 나타났다. 이런 감정이 가인에게 들어가서 분노와 살인을 낳았던 것이다. 이것을 처음부터 치료하지 않으면 골이 깊어진다. 특히 이런 감정은 타인과의 감정에서 많이 나타나서 미움과 분노를 만드는 것이다.

② 미워하는 마음
마음의 상처가 많으면 자신감이 없어서 모든 것을 열등감으로 느끼고, 자신과 아주 친한 사람 외에는 다 싫어한다. 이런 성격장애를 일으키는 원인이 여섯가지이다. 첫째. 부모와의 관계이다.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드는 어렸을 때 어머니의 관계가 안 좋았고, 이런 증상이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받은 상처로 인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둘째, 형제와의 관계이다. 편애는 우수한 형제와 열등한 형제를 비교하는 것이다, 이런 비교가 상처를 준다. 대표적인 사례가 야곱의 열 두 아들 가운데 요셉의 편애이다. 이런 편애가 미움과 증오, 심지어 인신매매를 하였던 것이다. 결국 이것이 부메랑이 되어서 아버지의 상처로 돌아온 것이다. 셋째, 이웃과의 관계이며, 넷째, 친구들과의 관계이다. 그리고 다섯째, 이성과의 관계이며 여섯째, 불신자와의 관계이다.
이런 상처들을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가?

상처의 감정을 버려라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1~32). 상처의 치유 원리는 간단하다. 상한 감정, 악독, 노함, 떠드는 것, 훼방, 악의, 이것은 마음에 묻어 두지 말고 내버려야 한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버리지 못하는 것은 유교 문화이다. 즉 체면 문화에 살다가 보니까 상처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감정을 내버리지 못하니까 치유의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이런 감정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와서 쏟아 부어야 한다. 그때 상한 감정을 버릴 수가 있다.

1. 인자하며 불쌍히 여겨라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엡 4:32)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불쌍히 여기야 한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일어나야 상처를 치유할 수가 있다. 지금도 이런 감정이 치유되지 않는 것은 지난날 상처를 받은 감정을 터트리며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기에 치유가 안 되는 것이다. 상처를 치유하려면 상처를 준 사람을 불쌍히 여겨야 한다. 사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도 또 하나의 피해자이다.

2. 하나님의 용서하심과 같이하라

“서로 용서하기”(엡 4:32)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먼저 용서하지 않고는 어떤 사람도 치유 할 수가 없다. 내 기억 속에 있던 상처의 기억을 지워버려야 한다. 이것을 지울 수가 있는 방법이 예수님이 나를 용서하신 것 같이 우리도 용서하면 되는 것이다.

3. 서로 만나서 화해 시도를 하라

만약 우리가 용서했다면 만나서 화해해야 한다. 예수님은 용서의 문제를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3~24) 이것이 진정한 상처를 치유하는 지름길이다.

4. 낙망하지 말고 인내하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우리가 용서하고 인내하면서 화해할 때 상한 감정이 치유를 받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도 이 땅에 계실 때 많은 상처를 받았다. 그 상처를 자신이 받고 다른 사람에게 돌리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의 아픔을 감당하셨다. 예수님의 상처로 인하여 우리가 치유를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처를 치유 받고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즐거워하는 자들로 즐거워하라”(롬 12:15).

예수 안에는 상한 감정은 모두 치유 받아야 한다. 끝으로 정신의학자 칼 메닝거(Karl Menniger)는 이렇게 말한다. 내 안에서 치유가 일어나기 위해서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사랑 안에서 자라고, 사랑이 우리 안에서 성장해야 한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