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우 목사의 사진에세이/순례자의 길] (5)풀의 꽃과 같고 아침 안개와 같은 인생

사진1 강원도 영월에 가면 조선의 6대왕 단종이 묻힌 장릉이 있다. 산마루 길을 따라 왕릉으로 가다 보면 오랜 세월 그 길을 지켜왔던 소나무들이 도열해 서 있다. 단종은 일찍이 아버지 문종을 여의고 11세에 즉위하여 왕이 되었다. 하지만 비정한 권력의 중심에서 세파를 이겨내지 못하고 숙부 수양대군(세조)에게 왕위를 내어주고 물러났다. 그 후 영월에 유배되었고 그곳에서 사약을 받고 16세에 일생을 마쳤다. 장릉으로 가는 길은 마냥 즐거워할 수 없는 애잔한 분위기다.

사진2 터지고 갈라져서 거북등과 같이 된 소나무 껍질은 오랜 세월 세상풍파를 견뎌낸 어느 노옹(老翁)의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과 같고, 꾸불꾸불 자란 소나무 둥치의 자태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 구부러지고 휘어진 노파(老婆)의 허리와 같다. 이리저리 휘어지고 터실터실한 껍질을 가진 소나무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으며 긴 세월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세종대왕의 손자 단종은 11세에 왕위에 올랐다. 아버지 문종이 즉위 2년 만에 3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왕이 된 단종은 비정한 권력의 중심에서 거친 세파를 이겨낼 수가 없었다. 왕위에 오른 지 3년 만에 숙부 수양대군(세조)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뒤로 물러나 어린 상왕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곧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강원도 영월로 유배되었다. 그의 나이 겨우 16세 때였다. 그로부터 4개월 뒤에 사약을 받고 외로운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했다. 당시 영월 호장이었던 엄흥도라는 사람이 그의 시신을 수습해 몰래 묻어 두었던 것을 200년이 지난 숙종 때에야 명예가 회복되고 그의 무덤을 장릉(將陵)이라 이름 붙여 왕릉의 모습을 갖추었다.

중종실록에 보면, 우승지 신상(申鏛)이 장릉에 다녀와서 보고했던 말이 기록되어 있다. “신상(申鏛)이 와서 복명하고, 김안국과 함께 말하다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며 묘는 영월군 서쪽 5리 길 곁에 있는데 높이가 겨우 두 자쯤 되고, 여러 무덤이 곁에 총총했으나 고을 사람들이 군왕의 묘라 부르므로 비록 어린이들이라도 식별할 수 있었고, 사람들 말이 ‘당초 돌아갔을 때 온 고을이 황급하였는데, 고을 아전 엄흥도(嚴興道)란 사람이 찾아가 곡하고 관을 갖추어 장사했다’ 하며, 고을 사람들이 지금도 애상(哀傷)스럽게 여긴다고 하였다.”

조선의 6대왕이었던 단종의 무덤 장릉으로 가는 중에 솔숲 사이로 꼬불꼬불 길을 만들어 놓았다. 길지 않은 길이지만 천천히 그 길을 걷노라면 단종이 외로움과 두려움에 떨며 흘렸을 눈물이 가슴에 젖어든다.

단종 복위 운동을 하다 발각된 성삼문 등 사육신(死六臣)도 죽었지만, 수양대군을 앞세우고 권력을 찬탈했던 한명회도 죽었다. 숙부에게 내쫓긴 단종도 죽었지만, 어린 조카를 그렇게 죽이고 왕위를 누렸던 세조도 역시 죽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다. 조금 일찍 죽고 조금 늦게 죽을 뿐이다. 인생은 풀의 꽃과 같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것이 인생이다. 인생은 안개와 같다. 잠깐 보이다가 금방 없어져 버리는 것이 인생이다.

인생은 아무리 장수를 해도 지나고 나면 다 풀의 꽃과 같고 아침 안개와 같다.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고, 죽은 후에는 그의 이름이 남고 그가 살면서 행한 이력이 남는다.

선을 행한 인생이었는지 악을 행한 인생이었는지 그것만 남을 뿐이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12:14)”고 했다.

그래서 성경은 인생의 덧없음을 깨닫고 허락된 하루하루를 선행하며 사는 것이 지혜로운 자의 삶이라고 가르친다. 나그네 인생길을 걸어가는 우리들은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선을 행할 때 가장 행복한 나그네가 된다. 또 그 길을 다간 후에는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고 하나님의 품에 안겨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약4: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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