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교회 현장에서 회자되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그건 “월세가 소명보다 힘이 더 세다”는 것이다. 월세가 몇 달만 밀리면, 목회자의 소명은 순식간에 끝없이 추락하고 만다. 목회자가 생계비 문제로 걱정과 불안에 휩싸이면,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 없다. 얼굴 표정에 그대로 나타난다. 그러면 몇 달 만에 처음 교회를 방문한 신자마저 기겁을 하고 도망간다. 그러면 목회자는 그것 때문에 절망한다. 악순환의 반복이다.그렇지 않아도 사면초가에 놓여 있던 미래자립교회들이 2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19 앞에 절망하고 있다. 월세를
영등포구 당산동에는 지하철 2호선과 9호선의 환승역인 당산역이 있다. 2호선은 지상에 있고 9호선은 지하에 있는데 연결하는 환승통로가 에스컬레이터로 48m나 된다. 그런데 문제는 출퇴근 시간이면 서로가 빨리 지하철을 갈아타려고 신경이 곤두서게 된다는 것. 그렇기에 혹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다가 환승열차가 들어온다는 방송이 나오면 누구랄 것도 없이 에스컬레이터에서 뛴다. 뛰지 말라는 문구를 사방에 써 붙여놓지만 무시하고 뛰는 바람에 사고가 자주 난다고 한다. 그나마 이런 문구를 붙여 놓은 후부터는 뛰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고 시간이
문체부와 울산시가 협의한 결과 제106회 총회 장소가 9월 13일 우정교회(예동열 목사) 대암교회(배광식 목사) 태화교회(양성태 목사)에서 분산 개최하게 됐다. 작년부터 이어져 온 코로나19 상황이 현재 더욱 악화된 상황이기에 총준위가 심사숙고한 결과물이다.코로나19 이전에는 5일 동안 진행되었던 총회였으나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작년 제105회 총회 때 새에덴교회(소강석 목사)와 전국 35개 거점교회에서 실시간 온라인으로 하루 동안 진행된 적이 있었다. 첫 온라인 총회로 열린 만큼 일부 거점교회에 참석한 총대들의 발언이 잘 전달되
어떤 점에서 논쟁(論爭)은 비현실적인 탁상공론에 빠질 때가 많다. 논쟁해서 어떤 답을 얻는다고 해도 현실에서 모든 문제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 논쟁에서 이겨도, 또는 져도 변화는 받아들여야 되고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순간 새로운 문제는 생겨나고 이 새로운 문제는 또 다른 논쟁(論爭)의 불씨가 되어 삶의 고통이 된다. 그런데도 우린 수없이 논의(論議)할 것을 가지고 논쟁한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논쟁거리도 되지 않는 것을 가지고 소모적인 논쟁을 한다.지금, 우리 총회에 일어나고 있는 WEA(세계복음주의연맹)의 문제
9월 13일 회집되는 제106회 총회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 1600여명의 총대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는 있는지, 방역 대책은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 주요 헌의안에 대한 충분한 토론과 신중한 결의는 가능한지, 나아가 공지된 일정에 맞춰 숙소예약까지 했는데 변동되지는 않을 것인지 등등 주로 안전과 일정에 관한 내용들이다. 이에 대해 총회 임원회와 본부 그리고 제106회 총회준비위원회도 상황을 주시하며 지혜를 모으고 있다. 크게 플랜 A,B,C로 각각 상황에 따라 대처하면 된다. 플랜A는 현 3단계(울산)에 따른 계획이고, 플랜B는
제106회 9월 교단 총회를 앞두고, 8월 3일 총회 입후보자 공명선거 서약식과 기호추첨이 이뤄졌다. 본격적인 선거운동 일정이 시작된 것이다. 앞으로 한 달 남짓, 본격적인 선거운동 기간 동안 입후보자들의 전력질주가 예상된다.지난 제102회 총회는 총회임원 선거 직선제를 전격적으로 결정했다. 금권선거의 폐단으로부터 교회를 지키고자 했던, 21년 전 선택한 제비뽑기 결의를 번복한 것이다. 제102회 총회는 직선제를 결의하면서 ‘17년 전 직선제로 회귀’가 되어서는 안 되기를 모두가 바랐다. 직선제에서 제비뽑기로, 절충형 제비뽑기로,
어느 조직이나 공동체를 막론하고 설립 정신이 있다. 국가도 건국 이념이 중요하고, 학교도 설립자의 건학 이념과 정신을 매우 중요시 한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에 총신대의 근간은 총회가 추구하는 신학의 정체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교단은 칼빈주의 개혁신학을 사수하려고 그 사명감으로 광야 길을 마다하지 않은 역사가 있다. 제44회 총회에서 우리는 신학적 정체성을 지키고자, 비록 교단의 역사적 적통성과 법통성이 우리에게 있었지만, 모든 것을 포기하고 힘든 광야의 신앙적 선택을 하였다.이런 역사적 배경을 기억하는 자라면 우리 총회의
18세기 이후 신학계에서는 성경 영감과 무오를 완전 부정하거나 왜곡하기 시작했다. 계시보다 이성을 우위에 두는 합리주의 신학이 성행하면서 성경의 초자연적 사건은 모두 배제되었다. 성경 완전 무오성은 비이성적인 소산으로 간주되었으며,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3문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법칙이다”란 선언은 무시됐다.성경의 부조화, 비과학성, 비역사성이 강조되었고, 근동 아시아의 역사와 비교하여 이스라엘의 신앙은 고대 종교의 하나로 규정지어졌다. 성경은 다양한 문서의 짜깁기로 이루어졌고, 시대의 아픔을
영국 출신의 강해 설교가 데니스 레인 목사님께서 한국 교회의 부흥과 성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한국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자랑만 하지 마십시오. 100년 전 영국은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교회의 전성기를 가졌었습니다. 그러나 그 화려하고 자랑스럽던 영국교회는 지금 텅텅 비어 있고 박물관처럼 전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50년 후에 한국이 영국과 같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그러면서 그는 지금 한국 교회는 부흥과 성장을 자랑하지 말고 겸손히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물론 영국과 우리나라의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19 사태로 지구촌 거민들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다. 지난날 총과 대포로 1, 2차 세계대전을 치루며 수많은 인명의 손실을 경험한 인류는 지금 전염병으로 더 많은 고귀한 생명이 희생되고 있으니, 이것이 포성 없는 3차 세계대전이 아닌가 싶다. 국가마다 정치와 경제,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무엇보다 사회적으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단절되는 문명사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이러한 가운데 지금 한국교회는 전례 없는 도전을 받고 있다. 오래 지속된 비대면 예배로 성도들의 신앙생활이 위축되었을 뿐
WEA 교류에 대한 찬반 논쟁이 너무 과열한 듯하다. 나는 서울지역의 WEA 연구위원회 공청회에서 설교할 때, 공청회의 목적을 우리의 개혁신학을 잘 지키고 세우는 데 두자고 하였다. 그러므로 의견이나 주장이 좀 다르다고 해서 격론을 하며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대립하거나 공격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WEA와의 교류를 주장했던 두 분 교수도 WEA신학이 분명히 개혁신학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고백하였다. 즉 신복음주의적 경향을 추구하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 교단이 WEA와의 신학적 교류를 극
1990년 5월 교회를 개척하면서 ‘교회가 지역사회와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라는 고민을 많이했다. 46평 월세 임대 교회당 안에 7평 정도 합판(合版)으로 칸을 막고 개척을 하는 궁핍한 상황이었기에 지금 생각하면 꿈이 야무졌다. 교회의 사회 참여에 대해 생각해온 바가 있었기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우선시 하면서 사회적인 관계를 맺어야 세상에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이 된다고 생각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이 예수님의 영역에 속한 것이고 주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시건만 교회는 사회에 영향력을 제대로 미치지 못했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19는 한국교회에 전대미문의 충격을 던졌다. 사상 초유의 비대면예배를 실시한 것을 비롯해 교육과 양육, 전도 등 일상의 사역들을 멈춰야 했다. 충격은 선교 영역에도 미쳤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에 나가 있는 2560여 명의 GMS 선교사들은 선교 사역을 할 수 없었고, 열악한 의료 환경을 감내하며 선교지에 고립돼야 했다.귀국한 선교사들 역시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6월 10일 현재까지 한국으로 귀국한 선교사는 총 1020명에 이른다. 어렵게 귀국을 했지만 선교사들이 맞닥뜨린 현실은 낙담이었다.
교단의 존재 의의는 우선적으로 신학과 교리의 울타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초대 교회가 율법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유대인의 주장으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나자 예루살렘 총회로 모여 이 일을 의논하고 많은 변론이 있었다. 이 회의를 계기로 유대인과 이방인이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다는 최종 결론을 도출했다(행15:1~11). 이후로 교회는 수많은 이단과 비진리의 도전과 공격에 직면해서 치열한 연구와 회의와 변론 과정을 통해 안으로는 바른 신학과 교리를 체계화했다. 밖으로는 성경적이고 정통적인 신학과 신앙을
어느 사회건 사람이 사는 사회 속에는 보여지는 ‘물리적 권력’과 보여지지 않는 ‘정신적 영향력’이 존재한다. 이 권력과 영향력이 어떤 공간에서 하나가 되지 못하고 부딪치게 되면, 권력은 권력에의 의지를 행사하려고 하고, 영향력은 그 권력에의 의지에 저항 내지는 반항, 즉 항거를 한다. 그리고 그 항거가 성공하게 되면 정신적이었던 영향력은 물리적 권력이 되어 힘을 가지고 조금 전까지 물리적 권력이었던 권력을 복종하게 하려고 한다. 이때 정신적인 영향력이 권력이 되고, 물리적 권력은 영향력이 되었기에 새로운 갈등이 유발된다. 지금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