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부활하셨다.그날 아침 무덤을 찾아갔을 때오만한 인간의 권세인 봉인은 끊어져 간 곳이 없고바위도 굴러 제자리에 없었다.사망의 그 검은 세력은 산산이부서지고 없었다.천사가 부활하신 예수님이 계신 곳을하늘의 음성으로 일러주었다.닭 울기 전, 열 번 백 번 모른다 하던그 마음에도부활은 눈 감지 않는 하늘의 진리를바라볼 수 있었다.예수님은 부활하셨다.이 사
예수님의 부활은 믿는자에게 형언할 수 없는 감격과 기쁨을 안겨준다. 중환자실에서 이제 가망 없다고 포기한 사람이 서서히 회복되는 것을 보면서 흥분하고 기뻐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물며 죄 없이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저주의 죽음을 당하신 주님이 살아나셨다는데 어찌 가슴 뛰지 않겠는가. 이 감격은 단지 그가 살아나셨다는 데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 부활
몇 개월전 저희 교회에서 어느 선교사님이 간증을 했습니다. 그 분은 선교지에서 수년 동안 열심히 사역하시다가 선교지 정부 당국과의 비자 문제로 일시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파송 교회로 돌아와서 간절히 기도하고 있던 중에 안색이 좋지 않아 보였던지 담임 목사님의 강권으로 건강 검진을 하게 되셨다지요. 근래들어 비자 문제로 신경을 써 소화가 좀 안되는듯 했지만
아이가 새로운 것을 해내는 것은 참 신기하고 신통하다. 보지 않는 것 같은데, 듣지 않는 것 같은데 어느 순간 가르치려 한 것을 스스로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물론 온 일가친척(?)까지 아이를 칭찬하곤 한다. 어른의 격려를 받은 아이 얼굴에는 자신감이 가득 피어오른다.아이는 어느 순간 기도 끝에 『아멘』하고 따라 하고, 찬송을 부를 때는 몸을 앞
1. 하나님의 백성의 불신실성사사기는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로 끝나고 있다. 과연 그렇다! 도대체 이런 시대가 어디 있는가! 우리는 사사기를 통해 사사 시대야 말로 혼란과 부패의 시대임을 단적으로 알 수가 있었다. 어떤 법이나 어떤 질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자기 생각대로, 자기 눈에 좋은
우리는 고난을 통해 고난의 주님을 만났듯이 이제 우리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부활의 주님을 통하여 우리의 모든 것이 살아나는 회복을 주옵소서. 이 나라의 경제 한파를 잠재우시고 역동하는 부활을 우리 경제에 주옵소서. 또한 모든 사역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던 나에게도 부활의 능력으로 채워 주옵소서. 주님이 무덤을 열고 나오심 같이 나또한 이 무거
대단했다. 여든 넷에 부르는 「적벽?뭅?여느 때와 또 의미가 달랐다. 언론에서도 난리가 났다. 20세기의 마지막 기적이라느니, 카루소나 파바로티가 그 나이에 노래를 했을까 등등의 비유를 해가며 추켜 세웠다. 68년 이후 지금까지 계속댄 나의 완창 행렬은 올해도 어김없이 이어졌다. 소리가 나의 분깃이었기에 가능했던 이번 완창도 무려 5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고려대학교의 어느 동아리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선배들이 신입생들에게 모교정신을 심어주기 위한 교육 중에 『너희들 약국에 가서도 마데카솔연고나 카네스텐연고와 같은 약을 달라고 할 때도 절대로 「연고」라고 하는 말을 쓰지 말고, 「고약」주세요 라고 해야 한다』며 목청을 높였단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신입생들은 『왜 연고를 고약이라고 해요?』하고 물었다. 그
얼마전 어느 뷔페 식당에 초대받아 갔을 때였습니다. 여러 가지 음식들이 즐비하게 차려져 있었는데 유난히 붐비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꿀엿에 무친 밤이 있어 너도나도 앞을 다퉈 가져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한편 야채 코너에는 신선한 오이가 가득 놓여있었지만 가져가는 사람들이 별로 많지 않았습니다. 정말 그날 오이에 비해 밤의 인기는 대단했습니다. 그것
『꼭 하루만 자유로웠으면 좋겠어요.』예전에 시누이가 아이에게 하루종일 시달리다가 지쳐 내뱉은 말이었다. 그러면서도 『이틀은 너무 보고 싶을 것 같고…』라는 말을 덧붙였다. 아이가 없었을 때는 그 말을 실감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아이가 생긴 이후에는 어느 순간 그러한 고백이 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음을 느끼게 됐다. 특히 회사에서 늦게 돌아온 날이나 집안일
어떤 분은 고난을 「변장된 축복」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고난 그 자체를 좋아할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고난 자체를 싫어한다고 할지라도 일생을 사는 동안 고난을 통과하지 않는 이는 아무도 없기에 고난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난을 억지로 견뎌야 하거나 혹은 고통스럽게 참고 견뎌야 하는 등의 바람직하지 못한 태도를 가지는 경우가
우리나라는 지난 해부터 IMF를 통해 고난의 주님을 만났고, 나는 디스크로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고난의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의 고난과 아픔으로 만나 주실 때가 있습니다. 아무도 모를 외로운 절규와 탄식 속에서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그 모든 것이 주님의 진정한 은혜의
방송의 위력은 대단했다. 편지가 전국 각지에서 쇄도하고 이교회 저교회 할 것 없이 와 달라는 초청이 줄을 이었다. 한경직 목사와 강원용 목사 등의 지도급 목회자의 격려도 잇따랐다. 그러나 그런 인기보다 더 소중한 것은 지난 번에도 밝혔지만 내가 완전히 예수쟁이로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우리 집안에서는 내가 장손이기 때문에 일년에도 수도 없이 제사를 지낸다.
서울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음식점을 찾을 때 어느 음식은 어느 골목에 있는 집에서 잘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나선다고 한다. 또 오다가다 들어간 음식점에서도 흔히 하는 말로 『이 집에서 제일 잘하는 음식이 뭔가요?』하고 물어서 그 음식점에서 제일 잘하는 음식을 시켜서 먹는다고 한다. 반면 경상도 사람들은 음식점에 들어서자마자 묻는 말이 『이 집에서 제일 빨리
길거리 여기 저기에서 팔고 있는 군고구마를 보노라면 어린 시절이 생각납니다. 얼마나 고구마를 좋아했는지 너무 많이 먹어 나중에는 어머님이 군고구마 가운데 토막을 잘라내어 숨겨놓으시고 양쪽 끝토막을 붙여놓고 「통 고구마」라고 하셨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여름 방학에 시골에 사시는 고모님 댁을 방문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그것도 방학이 끝날 즈음에 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