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은성 교수(총신대·역사신학)

‘완전한 순종’을 알게 한다

 

어릴 때 교회 설교자들로부터 듣던 주제들 중 하나는 “율법과 복음”의 관계였다. 율법으로부터 자유하다는 것이었다. 20대 초반에 마틴 디한(Martin R. Dehaan)이 쓴 <율법이냐 복음이냐>라는 책을 통해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정립하게 되어 매우 기뻤다. 그러다가 칼빈 선생이 쓴 <기독교강요> 2권의 내용을 처음 접했을 때 단순히 성자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말하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다가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한다는 사실만 아니라 율법을 지키는 것이 중생된 자의 마땅한 것임을 깨닫게 될 때 심정의 뜨거워짐을 느꼈다. 그리고 율법을 통하지 않고는 신약성경을 올바로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을 접하게 되자 율법 가운데 이렇게 은혜로운 진리가 담겨 있었는지 몰랐던 어린 시절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더욱이 율법이라 함은 단순히 ‘모세 5경’으로 말할 수 있으나 율법을 해석하여 적용시킨 자가 선지자임을 알게 되자 성경에 대한 시야가 넓어졌다(<기독교강요> 1권 6장 1항; 4권 8장 6항). 선지서를 읽을 때 그들이 어떻게 율법을 해석하고 당시 상황에 적용했는지 살피고 우리의 삶에 적용시킨다는 점에서 놀라운 성경관이 생겨났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개혁신학 교리서들에서 뭐라고 설명하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율법의 의미는 무엇인가? 율법이라 할 때 흔히 ‘모세 5경’을 일컫는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율법 안엔 도덕법, 의식법 및 재판법이 있다(<기독교강요> 4권 20장 14항). 도덕법 안에는 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순전한 믿음과 경건으로 드리라는 단순한 명령 ② 진정한 애정, 즉 정동(情動)으로 인간을 수용하라는 것이 있다(<기독교강요> 4권 20장 15항). 이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도덕법으로 여전히 우리가 지켜야 할 법이다. 율법이라고 말할 땐 도덕법을 뜻한다. 도덕법의 요약이 10계명이다(<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서> 41문). 나머지 두 법은 영적으로 해석되어야 할 부분이다. 물론 우리가 율법으로부터 자유하게 되었지만 ‘순종의 규칙’으로 하나님을 주셨기에 우리는 여전히 지켜야 한다.

율법의 유용한 이유는 무엇인가? 율법, 즉 도덕법이 우리에게 여전히 유용한 이유에 대해 3가지로 말할 수 있다. ① 일반인들인 경우-지킬 수 없는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게 하고, 자신의 본성, 심정 및 삶이 얼마나 죄성에 오염되어 있는지를 깨닫게 한다. 겸손케 만들어 그리스도가 얼마나 필요한지 깨닫게 한다(<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서> 95문). ② 중생되지 않은 자의 경우-다가올 진노로부터 피하도록 그들의 양심을 일깨우고 그리스도에게로 이끈다(<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서> 96문). ③ 중생된 자의 경우-자유 했기에 실천한다고 하여 의롭다 여겨지거나 정죄 받지도 않는다. 이 법이 그리스도에게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 지 알려준다. 감사를 일으킨다(<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서> 97문). 참된 신자들만 아니라 다른 자들에게도 행위언약으로서의 율법은 크게 유용하다. 율법은 삶의 규칙으로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뜻과 그들의 의무에 대해 알려주므로 그들을 인도하여 그것에 따라 걷게 한다. 자신을 점검하고 죄로 인해 겸손하게 되고, 죄를 증오하게 되고, 그리고 그리스도와 그분의 완전한 순종이 필요함을 더 분명하게 알게 한다. 이런 면에서 칼빈 선생은 “이기적 사랑 및 승부욕을 뿌리부터 근절하는 구조책은 성경의 교리”라고 한다(<기독교강요> 3권 7장 4항).

율법의 목적은 무엇인가? 칼빈 선생은 <기독교강요> 2권 7장에서 율법의 목적, 즉 두 가지 기능과 한 가지 유용성에 대해 설명하는데 ① 자신의 비참함을 알리는 기능을 한다(2권 7장 6~9항), ② 경건함을 가르친다(2권 7장 10~11항), ③ 의의 기준과 교훈이다(2권 7장 12~13항)라고 했다. 이러한 설명을 개혁신학 교리서들이 포함하고 있다. 중생에 대해 깨닫고 싶을 때 또는 구원에 대한 진리를 깨닫고자 할 때 반드시 죄에 대해 또는 자신의 비참함에 대해 통한히 여겨야 한다. 자신을 살펴서 깨닫게 되는 것처럼 느끼지만 실제로는 성령께서 깨닫는 영을 허락하셔야 한다. 이럴 때 하나님의 말씀이 요청되는데 그것을 율법이라고 한다(<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 3문). 성령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 외에 다른 것을 가지고 역사하시지 않는다. 물론 하나님이시기에 수단 없이도 행하시지만 우리가 여기에서 짚고 가야 하는 것은 일반적 원리인 것이다. 특별한 경우 성령께서 직접 역사하시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경우에도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을 근거로 그 역사를 점검해봐야 한다. 다른 경우나 충돌할 경우엔 성령의 역사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점검해야 한다.

도덕법의 목적은 무엇인가? 율법을 도덕법이라고 했을 때 그 목적은 무엇일까? 순종하기 위함이다. 그 순종은 내용을 보고서 이성으로 판단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주신 창조자 하나님의 권위이기 때문임을 잊어서는 결코 안 된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폐하신 것이 아니라 강화시켰기 때문이고(<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9장 5항), 인간의 부패성은 방임과 방종에 늘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자 그대로 도덕법을 해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항목 이면에 담겨진 하나님의 의도를 찾는 것이 중요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하지 말라고 명했을 경우엔 하라는 그분의 의도를 파악해야만 한다는 것이다(<기독교강요> 2권 8장 9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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