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현 원장(한국고등신학연구원)

우리 민족에 대한 일제의 폭압과 신사참배를 비롯한 사상적 세뇌는 수많은 독립투사를 고립 시키고, 사람들을 좌절시켰으며 그들을 배교자로 만들었다.

1919년 3·1운동의 민족대표요 감리교역사의 산 증인 정춘수는 한국감리교회의 내선일체에 앞장섰고, 또 다른 감리교의 태두 윤치호는 해방된 후에도 우리나라가 독립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스스로 친일의 길을 걸었던 정춘수의 전도를 받아 신앙과 민족의식을 갖고 평생을 살다간 신석구 목사는 “나는 민족의 독립을 거두려는 것이 아니라 심기 위해 그렇게 살아간다”고 고백하기도 하였다. 그런 신석구 목사는 마침내 기쁨으로 해방을 맞이했지만, 또 다른 민족 분단의 현실인 한국전쟁 때 평양으로 끌려가 순교했다. 신석구 목사는 20세기 우리 역사의 암울한 질곡의 가시밭길을 걸어가면서도 민족과 교회에 희망을 심어주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홍택기 총회장의 공식적인 신사참배 가결이라는 통한의 역사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선택한 신앙의 전사들은 순교와 투쟁과 절개와 지조로 반시대적이고 반역사적인 흐름에 맞섰다. ‘나의 기도의 5종목’으로 담담히 순교를 맞이한 주기철 목사, “기독교인의 삶이란 잘 사는 것보다 잘 죽는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긴 손양원 목사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민족이 불운에 처했을 때, 위기를 맞이했을 때, 목사와 장로, 성도는 차이가 없었다. 27세에 기독교에 입교한 김구 선생은 “경찰서 천 개보다 교회 하나가 낫다”고 강조했고, 평생 성경책을 가슴에 끼고 산 도산 안창호 선생은 예수의 마음으로 전 세계에 흩어진 교포들을 위로했다. 사돈 윤치호가 민족을 배반하고 안일한 삶을 살아갈 때 한서 남궁억 선생은 성기에 불 고문을 당하면서까지 “일하러 가세, 일하러 가 삼천리 반도 강산…”을 외치며 참혹한 현실을 뚫고 예수 희망의 노래, ‘교육입국 신앙구국’을 외쳤다.

여성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린 유관순 열사는 만세운동을 벌이다 거의 온 가족을 잃었고, 서대문형무소 8호 감방에 갇혀서 방광이 터져 일제에 의해 맞아 죽을 때까지 민족을 향한 사랑과 신앙의 절개를 지켰다. 스코필드의 도움을 받아 해외유학을 한 고아들의 어머니 어윤희는 평생 고아 사업에 헌신했으며, 암살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김원봉의 아내 박차정은 선교사들이 세운 부산일신학교 출신으로 기관총을 메고 사관생도를 교육했다. 맹산독립단을 세워 치마 속에 폭탄을 숨겨 독립을 위해 싸운 조신성도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한국에 와 있던 선교사들도 우리 역사의 현실에 뛰어들었다. 소아마비의 불편한 몸이었지만, 세계적인 수의학자가 된 프랭크 스코필드는 3·1운동 만세현장의 사진을 찍고, 화성의 수촌리와 제암리에서 일어난 일제의 잔혹한 학살현장을 전 세계에 알려 34번째 민족대표가 되었고, 1938년 신사참배를 결정하는 자리에서 “이것은 불법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요”를 외친 브루스 헌트는 강제 출국을 당할 때까지 만주와 감옥에서 흩어진 한인들을 돌보고 그들을 위로했다.

목사와 장로와 성도와 선교사라는 신분의 차이를 가리지 않고 우리민족의 현실과 운명에 뛰어든 이들에게 심장을 뛰게 하는 생명과 정의와 사랑, 그리고 복음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는 지난 100년간 한국사회와 기독교에 가장 중요한 두 가지 화두인 ‘일제’와 ‘전쟁과 분단’의 현장에서 예수의 심정으로 살아간 수많은 기독교 지도자의 삶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시대가 암담하고 희망이 쉽사리 보이지 않을 때일수록 역사 가운데 우리가 본받을 역할모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종교개혁자의 근본정신을 찾아 나서듯, 이 민족과 교회의 미래를 묻기 위해 그렇게 치열하게 민족과 복음을 껴안고 살아간 분들을 찾아나서야 한다.

복음을 교회 안에만 가둬두지 말고 사회와 민족의 영역으로 나가보자. 우리가 위인이라는 말로 어려서부터 배워온 인물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는지를 밝히고 교회 안의 기독교인들에게 가르칠 필요가 있다. 한국교회의 쇠퇴와 타락을 지적하고 비난하는 것도 물론 필요한 것이지만, 역사적 교훈과 긍정적 모델을 발굴해 계승하는 것 역시 한국교회의 변혁과 발전을 위한 또 하나의 길일 수 있다. 광복절을 보낸 오늘에는 더욱 그러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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