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하게 살아가게 하는 힘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회개하면서 큰 위로를 얻는다. 교리에서 기독교인이 위로를 얻는 세 가지 길이 있다고 가르친다. ①자신의 죄와 비참함의 심각성을 깨달을 때이고, ②그때 구원 또는 구조 받는 길을 깨달을 때이고, ③그 깨달음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할 때이다(<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 1째 주간 2문). 한 마디로 ‘회개’할 때이다.

회개의 심리적 효과 때문에 위로를 얻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는 회개의 두 번째 측면이기 때문이다. 지난 주에 다뤘던 회개에는 양면성이 있는데 하나는 죄 죽이기이고, 다른 하나는 영 살리기라고 언급한 바 있다. ‘죄 죽이기’를 통해 기독교인은 자신의 비참함을 처절하게 체험해야 한다. 그 전에는 위로를 얻지 못한다. 이러한 체험은 자신이 처한 처지를 비관하는데서 비롯되는 것보다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반영시킬 때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체험이 곧 ‘죄 죽이기’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실하게 세상 삶을 살았는지 지적할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만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기독교의 가장 큰 진리일 뿐 아니라 모든 계명을 요약한 것이다.

회개의 두 번째 측면은 ‘영 살리기’이다. 위로이다. 기쁨이다. 소망이다. 힘이 솟구친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영 살리기’를 영성(靈性, spirituality)과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두 단어는 결코 같은 뜻을 가지고 있지 않다. 또 흔히 영적인 힘을 받는 것이라고 착각하거나 영적 은사를 받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참된 회개의 ‘영 살리기’ 측면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죽이는 것이 내적이라면, 살리기는 외적이다.

회개를 다룰 때 교리들을 살펴보면 항상 이러한 두 가지 측면을 다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비근한 실례로 “범한 죄들로 인해 경건한 슬픔으로 심정에서 슬퍼하고…지금부터 계속하여 그들은 두려움과 떨림으로 자신의 구원을 위해 더욱 부지런히 일한다.”(<돌드레히트 신조> 5장 7항) 또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 자신이 범한 죄들을 개인적으로 고백해야 하고, 죄들의 사면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손상을 입힌 자들에게 자신이 회개한 것을 보여 줘야 한다. 그렇게 회개하면 그들은 회개한 자와 화해해야 하며, 사랑으로 그를 받아 주어야 한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5장 6항) 그리고 “자신의 죄들을 아주 슬퍼하고 증오하여 모든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서고 새롭게 순종하는 모든 길에서 그분과 함께 지속적으로 걸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서> 76문) 이처럼 우리는 교리들에서 회개의 두 가지 측면을 볼 수 있다.

첫째, ‘영 살리기’의 의미는?

“낭패와 두려움이 가라앉게 된 후 영이 느끼는 기쁨이라 말해선 안 된다. 오히려 영 살리기란 거룩하고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열망이고, 중생에서 일어난 열망이다.”(<기독교강요> 3권 3장 3항) 이 정의는 칼빈이 밝힌 것이다.

이에 반해 대체적으로 ‘영성’이란 말로 영적 삶을 성장시킬 수 있다고 알고 있다. 그렇지 않다. 영적 삶은 어떤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불가능하다. 어떤 단계나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반드시 ‘죄 죽이기’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에 이어서 칼빈은 “이는 마치 인간이 하나님께 대해 살기 위해 자신에 대해 죽는 것을 의미한다”고 덧붙인다.

둘째, 왜 ‘영 살리기’가 필요한가?

정말 죄에 대한 내적 투쟁이 있다면 반드시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열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성화’를 설명하면서 언급했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세 전에 택하신 이유는 거룩한 삶을 위함이다. 그렇다고 거룩한 삶이 구원의 조건이나 선택의 조건이 결코 아니다. “모든 자의 의무”(<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5장 5항)이다.

“첫째, 우리가 사는 동안 우리의 죄성을 더욱 더 알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죄들의 용서와 의를 더욱 더 진지하게 찾기 위함이다. 둘째, 끊임없이 부지런히 우리는 성령의 은혜를 하나님께 간구해야 하지만 이생 후 완전의 목적을 얻을 때까지 하나님의 형상을 더욱 더 갱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 44째 주간 115문)

기독교인으로 신자답게 살고 싶어 하는 자, 참 신앙으로 후회 없이 살고 싶어 하는 자, 경건한 자로 살고 싶어 하는 자,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자는 ‘영 살리기’를 체험하는 자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영 살리기’는 인간 사회에서 진실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사회적, 교회적, 개인적, 가정적 임무를 성실히 행하는 자이다(잠 27:23 참고).

자신의 이기심과 야심 및 욕망을 억제하면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죄 죽이기를 통해 이웃 사랑의 실천이 가능하다. 이처럼 회개는 두 가지 측면을 가진 것으로 평생 행하는 것이지 어느 순간이나 과정을 통해 불가능하다. 지속적인 일평생을 통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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