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예외 없이 자기 가치관과 신념에 의해 생각하고 행동한다. 우리 사회는 몇 해 전부터 열풍이 불고 있는 인문학과 협동조합, 마을공동체와 같은 더불어 사는 노력들이 높아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너나할 것 없이 돈의 잣대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모습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또한 돈벌이만 되면 사람의 생명조차 아랑곳 하지 않는 무서운 세상으로 돌변하고 있다.

300명이 넘는 꽃다운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의 피 끓는 아픔은 만사 제쳐두고 과도한 보상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모습에서 동병상련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실종된 기업윤리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된 검증 절차 없이 유해성분을 넣은 가습기 살균제를 아무렇지도 않게 팔아 불특정 다수의 생명을 잃게 하거나 부작용으로 고통당하게 하는 일이나, 눈속임으로 배출가스를 조작해 엄청난 수익을 낸 모 자동차 회사에서 보듯 돈 벌이가 되는 일이라면 인간존중은 뒷전이 된 시대가 되어 버렸다.

더 불행한 것은 온전한 복음으로 사람을 치유하고, 인간존중의 문화를 이끌어가야 할 교회마저 배금주의 사상에 흠뻑 젖어있는 형국이다. 교회 건물과 교세, 예산 규모에서 교회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이제 애교수준이다. 가뜩이나 불신 받고 있는데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판을 치면서 교회의 권위와 정의는 추락하고 있다.

교회 분쟁이 발생하면 돈 싸움에 승패가 갈리고, 돈을 주면 재판결과가 뒤집히고, 돈 뭉치에 따라 표심이 흔들리는, 그야말로 근래 한국 교계는 돈이 판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노회나 교회 분쟁이 발생하면 돈을 주면 해결해 주겠다는 브로커가 존재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적어도 우리 교단의 목회자와 장로들은 개혁주의를 계승하는 것에 자긍심이 크다. 내년이면 종교개혁 500주년이다. 바른 신학을 파수하는 개혁신학의 후예로서 신앙의 양심과 교회법은 ‘기승전(起承轉)’에 해당될 뿐 ‘결(結)’은 돈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종교개혁 정신을 다시금 정립하고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교단을 세우는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에서, 기승전결 모두가 개혁신학에 근거한 가치판단이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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