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준 목사(열린교회·총신대 교수)

진리의 전달자 목회자여, 팔꿈치가 닳도록 공부합시다
목사는 일평생 탐구하는 학문인 … 성경 진리 통해 하나님 사랑 보여줘야

 

김남준 목사

오늘날 조국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심각한 위기는 지성의 위기다. 성경과 신학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없는 설교, 교회가 처한 현실에 대한 지식과 고민이 없는 기독교적 가르침이야 말로 조국교회가 봉착한 가장 심각한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조국교회의 위기를 영적 위기로만 규정할 뿐, 지성의 회복에 대해 깊이 숙고하지 않는다. 물론 오늘날 조국교회가 과거에 비해서 신앙적으로 침체되어 있고, 전도나 목양의 열정이나 교회를 위한 헌신에 있어서도 과거와 달리 소극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다시 외양적으로 과거의 열렬했던 시대의 신앙생활로 복귀하는 것이 유일하고 궁극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기독교의 영향력을 지속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요구된다.

복음주의의 스캔들

오늘날 기독교의 불명예스러운 평판들은 상당부분 기독교가 처한 지성의 위기에서 기인한다. 이에 대해 마크 놀(M. A. Noll)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청교도들과 존 웨슬리, 조나단 에드워즈와 같은 18세기 복음주의 대각성 운동의 지도자들 그리고 19세기 북미의 존경할 만한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인 감리교도 프랜시스 에즈버리, 장로교도 찰스 핫지, 회중교도 몬로 그랜트 이들 모두는 부지런하고 엄격한 지성의 활동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지성적인 활동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유일한 방법 내지는 최선의 방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지성적인 삶을 믿었으며, 복음주의 그리스도인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하지만 이러한 영적인 선조들과는 달리 현대 복음주의자들은 하나님 아래서 포괄적인 사고를 추구하거나 지성의 가장 깊은 영역까지 기독교적 관점으로 형성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오늘날 복음주의는 역사적으로 두 개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 바로 역사적 개혁주의와 열정적 부흥주의이다.

첫째로 역사적 개혁주의다. 개혁주의는 그 시작이 넓게는 마르틴 루터, 좁게는 제네바의 개혁자 존 칼빈에 의해 시작되었으나, 그들의 신학은 보편교회 신학의 뿌리인 초대교부들은 물론 중세신학자들의 학문적 전통과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은 교부들의 신학을 통해 성경으로 돌아간 신학이었다. 이들의 신학은 16세기 중반~17세기 초반을 거치면서 더욱 체계화되고 세련되어져 갔다. 개혁파 정통주의로 불리는 그들의 신학은 스콜라주의를 비롯한 중세 신학에서도 개신교의 대의를 위해 필요한 자양분들을 섭취하면서 웅장한 기독교 사상을 이루었다. 이들이 견지했던 기독교의 전통은 철저한 지성의 헌신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개진한 바와 같이 신학이 포괄해야할 지식의 범위는 “하나님, 세계, 그리고 인간”이었다. 이것은 엄밀히 말해서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 그리고 그 성품의 시행방식에 대한 이해로서, 그 대상인 인간 사회로서의 세계와 자연 세계에 대한 지식과 보편 존재로서의 인간성과 개별적 존재로서의 ‘나’자신에 대한 지식을 포함한다. 개혁주의의 전통은 지성의 헌신이다. 성경과 학문에 대한 진지한 탐구와 성심적(誠心的) 경건은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 지식과 사랑이 분리되지 않는 것은 기독교 정통 신앙에 있어서 오래된 전통이었다. 복음주의는 이러한 개혁주의의 전통을 뿌리로 삼고 있다.

둘째로 부흥주의(Revivalism)다. 복음주의의 또 다른 뿌리로서의 부흥주의는 학문과 지성의 헌신을 통한 객관적 진리의 인식과 사상을 강조하기보다는 열정과 신비를 통한 주관적 경험을 강조했다. 사실, 신앙에 있어서 성경과 학문에 대한 진지한 탐구의 지적 전통을 무시하고 그 중심축을 주관적 체험과 신비의 강조에 두는 경향은 늘 있어 왔다. 2세기 중엽에 시작된 몬타누스주의(Montanism)와 3세기에 시작되어 천년이 넘도록 영향을 끼친 수도원주의, 14~15세기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 Eckhart), 요한 타울러(J. Tauler), 하인리히 주조(H. Suso) 등으로 대표되는 중세후기의 신비주의, 17~18세기에 일어났던 친첸도르프(N. L. Zinzendorf), 슈페너(P. J. Spener)와 프랑케(A. H. Franke)에 의한 경건주의, 그리고 20세기의 오순절 운동과 오늘날의 신사도 운동이나 이머징 처치 운동 같은 것들이 바로 그러한 경향을 따랐거나 따르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오늘날 복음주의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은 18~19세기 미국의 제1,2차 대각성 운동과 이후에 전개된 무디의 부흥운동과 오순절 운동이다. 조나단 에드워즈와 같은 탁월한 신학자에 의해 지도된 1736년과 1740~43경에 있었던 대각성과 부흥운동에서도 이러한 문제점들은 드러났다. 특히 조지 휫필드(G. Whitefield)같은 설교자는 순수한 사역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혼란에 길을 여는데 이바지했다. 이러한 영향으로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정규적인 신학교육을 받고 지성적으로 준비되는 것이 설교자나 목회자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한 조건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당시 상황에 대해 이얀 머레이 (I. H. Murray)는 말한다. “새로운 시대에 전통적인 직위와 직무들은 성경을 단순하게 설교하기를 주장하고 기독교 목회사역을 공격하는, 제대로 된 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말이 유창한 사람들로 대표되었고 그런 사람들이 발언할 기회를 훨씬 더 많이 얻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점과 혼란은 찰스 피니(C. Feeney)에 의해 주도된 19세기의 제2차 대각성 운동에서 더욱 심각하게 나타났다. 그는 설교자로서 자기 시대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나, 신학적으로는 위험하리만치 부주의하여 정통 신앙으로부터 이탈하였다. 이러한 오류들은 후일 은사주의 운동을 따르는 교회들에 의해 계승되어 오늘날까지 혼란을 더하고 있다.

더구나 기독교 신학의 지적 전통들에 대한 충분한 교육 없이 목회자가 되는 상황은 이러한 혼란스러운 현실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지성이 은혜를 배척하고 은혜가 지성을 무시하는 상황 속에서, 사상을 전수하고 가르치던 기독교의 전통이 무너져 버린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마크 놀이 지적하는 바, 오늘날 ‘복음주의의 스캔들’이다. 쉽게 말하자면, 기독교 신앙이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부부로서 지내던 지성적이고 사상적인 전통을 버리고 외도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기독교가 아내를 버리고 바람난 상대는 감정에 치우친 열정주의와 자기만족, 세속주의, 지성 경시 풍조 같은 것들이다.

목사는 학문인이어야 한다.

흔히, 바람직한 목사상(牧師像)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목회자는 학자여야 한다.” 그러나 영어권에서 ‘학자’(scholar)라는 말은 스스로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존중의 의미를 담아 불러줄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따라서 목회자 자신이 스스로를 지칭하며 “목회자는 학자여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목사는 학문인(academic)이어야 한다.” 라고 말하고 싶다.

본질적으로 목사는 하는 일 자체가 진리를 다루는 일인 사람이다. 즉, 목사는 진리를 직접 다루거나 그것과 관련된 지식을 취급하는 일을 주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가 어찌 학문에 관계가 없는 사람일 수가 있는가? 진리는 모든 지식들을 하나로 엮어서 체계화 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모든 진리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복음이고, 성경은 모든 진리의 보고이다. 다시 말해, 성경의 진리는 다른 모든 자연적 진리나 도덕적 진리와 동떨어진 채로 존재하지 않는다.
목회자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발견하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난 신적 성품을 올바르게 해석하고 경험할 뿐 아니라, 그렇게 깨달은 진리를 자신에게 적용하여 자신의 시대 안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 주어야 한다. 자신에게만 감격스러운 방식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것이 전달될 수 있는 방식으로 진리를 소유하여야 한다. 전달하는 진리의 본질적인 내용들은 훼손되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언어로 그들의 사고에 맞게끔 전달하여, 그들로 하여금 공감할 수 있게 하려면 목회자는 성경뿐만 아니라 언어를 비롯한 다양한 여러 학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세계와 인간에 대한 지식은 서로 유통하는 가운데 더욱 진리를 찬란하게 드러낸다.

오늘날 조국교회를 보자. 신학생들은 깊이 있는 학문의 탐구에 열중하지 않는다. 이미 많은 신학교들이 학생들로 하여금 성경을 원어로 읽게끔 교육시키려는 의지를 상실하고 있다. 정확한 교리와 깊이 있는 사상의 발전은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현실사회를 분석하고 개혁하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지혜와 판단력을 제공한다. 역사적으로 근대에 이르기까지 성경을 원전으로 읽고 라틴과 헬라교부들의 신학 작품들을 숙독하는 것이 신학공부의 첫걸음으로 여겨졌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목사는 일평생 공부하는 학문인이어야 한다. 그는 최소한 네 가지 방면에 기여해야 하는데, (1)교회적 기여 (2)학문적 기여 (3)목회적 기여 (4)사회적 기여가 그것이다. 이 중 교회적 기여는 보편교회의 일원으로서 공교회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이 네 가지 기여는 끊임없는 지식의 탐구를 요구한다. 하나님뿐 아니라 교회와 세상, 그리고 현대정신과 인간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여야 한다.

우리가 이 모든 지식의 대상들을 직접 경험할 수 없기에, 독서와 학문적 교류 혹은 연구를 통해 간접적으로 지식을 섭취하여야 한다. 목회자의 충성스러움은 성경진리를 탐구하고, 그것을 따라 살도록 자신을 복종시키고, 그것을 전파할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심화하는 것으로 입증되어야 한다. 이러한 지성적 노력 없이 편견을 가지고 세상을 적대시하거나 세속에 빠지는 것은 변명할 수 없는 의무 태만이며 직무유기다.

18세기의 전설적인 설교자 조지 휫필드(G. Whitefield)는 당시 진기한 기록을 남길 정도로 먼 거리를 여행하며 복음을 전했던 순회 설교자이다. 그는 초인적인 헌신의 삶으로 바쁜 일상 속에서도 매일 15가지 목록을 가지고 자신을 점검하였는데 그 중 13번째 질문이 우리의 주목을 끈다. “나는 오늘도 연구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는가?”

목사가 학자는 아니어도 끊임없이 지식과 씨름하는 학문인이어야 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이것은 결코 지식이 신앙을 대신한다거나 목회의 전부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다. 우리는 흔히 지성을 강조하는 목회에 대해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그렇게 목사가 공부를 많이 하고, 교인들에게 지식을 많이 강조하다 보면 그들이 머리만 커지고 마음은 차갑게 되지 않겠는가?” 나는 그렇게 질문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렇게 되묻는다. “당신이 알고 있는 조국교회 중 어떤 교회가 그렇게 너무 많은 지식을 알고 있어서 위험할 정도로 머리만 커진 교회입니까?” 그리고 한 가지 질문을 덧붙인다. “대체, 어느 목회자가 단지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가슴이 순교자의 열정으로 타오르게 되었습니까?”

오히려 나의 신앙과 목회의 여정을 되돌아볼 때, 내가 경험한 깊은 영적변화는 대부분 독서와 관련이 있었다. 복스러운 첫 회심은 톨스토이, 청교도적 회심의 반복은 신약성경과 영국의 신앙서적들, 기독교 사상의 광대함과 유장함에 대한 눈뜸은 아우구스티누스와 테르툴리아누스, 이레나이우스, 히폴리투스 등의 교부들의 저작들을 읽음으로써 이루어졌다. 이러한 나의 변화는 이후 다른 시대나 신학자들과의 만남에서도 꼭 같았다.

진리에 대한 관심이 진실하다면, 그것은 반드시 학문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야 한다. 목회자는 단지 그 진리를 혼자 이해하고 품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세상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교회의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어 그분을 사랑하게 하여야 한다. 목회자가 성경과 신학 뿐 아니라 세상과 인간에 대해서도 열심히 탐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무릎이 닳도록 기도하고 팔꿈치가 닮도록 공부하는 목회자들이 이 시대에 희망이 될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는 진리의 전달자가 될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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