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원 목사(광주중흥교회)

우리의 부르짖음에 늘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은 고통의 문제를 잊지 않으시고 소리 지르라고 권고하셔

 

“이는 예수께서 그에게 이미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마가복음 5:8)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거라사 지방의 군대 귀신 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주시는 내용입니다. 생각해보면, 귀신이 한둘만 들어가 괴롭혀도 그 괴롬이 보통이 아닐 텐데, 이 사람에게는 군대라고 하는 이름의 귀신이 떼거리로 몰려 들어가 한꺼번에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그 괴로움이 심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를 찾아오셔서 그 모든 귀신을 다 쫓아내주시고, 그를 온전케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은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주신 그런 피상적인 상황에 있지 않습니다. 본문의 사건 가운데는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본문과 같은 이야기를 더욱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와 연결되는 앞뒤 상황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자주 그 구절 자체에서보다 문맥 속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사건 바로 앞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풍랑 이는 바다를 건너가시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 사건의 바로 뒤에는 마가복음 5장 20절까지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주시는 얘기가 계속되고 있으며, 21절부터 상황이 변합니다.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맞은편으로 건너가시니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배를 타고 거라사 지방으로 건너가시는 겁니다. 그것도 보통 상황에서가 아니라 생명을 위협할 만큼의 아주 큰 풍랑 가운데서 건너가십니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다시 바다를 건너오십니다. 그 바다를 건너가시고 건너오시는 중간에는, 단 하나의 사건만 일어나고 있습니다. 바로 본문의 사건, 군대 귀신 들린 자에게서 그 귀신을 쫓아내 주시는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 큰 풍랑 가운데서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결국 바다를 건너가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하나의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과연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위해 그 풍랑 이는 바다를 건너가셨습니까?

제자들에게 풍랑을 잔잔케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자신에게 있음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였을까요? 아니면, 사역에 너무 피곤하셔서 잠시 뱃전에서 눈이라도 붙이시기 위해서였을까요? 아니지요. 예수님에게는 배를 타야만 하셨던, 그리고 그 엄청난 풍랑 가운데서라도 반드시 바다를 건너가야만 하셨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 때문에, 아무리 큰 풍랑이 배와 생명을 위협하더라도 바다 건너가는 것을 결코 포기할 수가 없으셨습니다. 두말 할 필요 없이 군대 귀신 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주시고, 그에게 자유와 평안과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제 모든 일이 끝났습니다. 군대 귀신 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주셨습니다. 더 이상 거라사 지방에는 주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오시는 것입니다. 이는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입니까?

바로 한 영혼에 대한 주님의 관심입니다. 그것도 사람들 눈에 가치 있어 보이는, 요즘 우리 목사들 말하는 식으로 한다면 헌금도 좀 할 것 같고, 목사 말도 잘 들을 것 같고, 교회 위상도 높여 줄 것 같은 사람. 어쩌면 사회적으로도 신분이 좋고, 재산도 많고, 인격도 좋은, 그러면서 신앙까지 좋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군대 귀신에 사로잡혀 완전히 미쳐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로부터 소외되어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도 소외되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 한 영혼에게 관심을 가지셨고, 그를 불쌍히 여기셨으며, 그를 구원하시기 위해 풍랑 이는 바다를 건너가는 수고까지 감당해 주셨던 것입니다.

다름 아닌, 우리를 찾아오시는, 우리를 권고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얘기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구원에 대한 성경의 계시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에 팔려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대로 한다면 죽어 마땅한 죄인들, 혹은 죽을 수밖에 없었던 죄인들이 아니라, 이미 허물과 죄로 하나님께 대해 완전히 죽어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악한 사탄 마귀에게 스스로 팔려있던 자들이었고, 사탄의 역사와 지배가운데 고통당하던 자들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당하는 모든 수고와 고통들은 우리가 죄에 팔린 결과로 찾아온 것들입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그 열매들을 따먹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질병이 찾아왔고, 고통이 찾아왔고, 정신적이고 영적인 소외가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런 우리를 구원해주시기 위해 하늘 영광 보좌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약하고 눌린 자들과 함께 사시다가, 마침내는 우리를 구원코자 하신 그 한 가지 이유 때문에 가장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십자가에서 스스로 맞으셨습니다.

우리를 죄 가운데서, 그리고 사탄의 억압 가운데서 구원해 주시고자 하시는 주님의 열정은 그처럼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풍랑 아니라, 십자가 아니라, 그 무엇도 우리를 구원코자 하시는 주님의 열정과 열심을 가로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은 그 어떤 수고와 고통이 따른다 할지라도, 절대로 그것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결과로 오늘 우리가 구원받았고,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며, 자유와 생명과 풍성한 삶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그와 같은 주님의 권고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은 옛날에는 그런 식으로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를 권고하셨고, 우리를 구원하셨지만, 지금은 우리에 대해 무관심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주님은 오늘도 예전과 똑같이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고, 똑같이 권고하고 계시고, 똑같이 구원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삶에 문제가 생기고, 어려움이 생기고, 막히는 일이 생길 때마다 주님께 아뢸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이 들려주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주님은 거라사 지방에 그 군대 귀신 들린 자가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아셨을까요? 물론 하나님이시니까 다 아셨겠지요. 하지만 본문은 다른 한 가지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바로 귀신 들린 자의 고통스런 부르짖음에 대한 얘깁니다.

본문은 그 사람이 너무도 고통스러워 밤낮으로 무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소리를 질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는 분명히 믿기로, 그 고통의 부르짖음이 바다를 건너가 우리 주님의 귀에 들려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주님께서는 갈릴리 바다 건너편에서라도 그 귀신에 사로잡힌 고통당하는 영혼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 일부러, 그리고 바로 그 일만을 위해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셨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그것이 오늘 우리의 모든 문제에 대해 우리를 권고해 주시는 은총과 사랑의 하나님 모습입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 상황에 놓여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로부터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절대로 우리에 대해 무관심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항상 깊은 관심 속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고, 우리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고 계십니다. 아니, 오히려 그분은 우리의 부르짖음을 요구하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사실 본문에서 귀신 들린 사람의 부르짖음은 기도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고통 가운데 소리 지른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주님은 그 고통의 소리를 듣고 풍랑 이는 바다를 건너가 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분이 사랑하시고 자기 몸을 내어 구원해주신 그분의 자녀들이 기도할 때, 얼마나 속히 그 기도에 응답하시고, 그들의 고통을 풀어주시겠습니까?

아모리와의 전투 때,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다 이겨 가는데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려 합니다. 그때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고하여 외칩니다.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지어다.”

사실 태양과 달이 뜨고 지는 현상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면서 자전을 계속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태양과 달이 멈추었다는 것은, 사실은 태양이 멈추고 달이 멈춘 것이 아니라, 시속 1600km가 넘는 속도로 태양 주위를 돌던 지구가 갑자기 한 순간에 멈추어 서 버린 것을 의미합니다. 여호수아의 기도 한 마디에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자기 백성들을 권고하시고 그 백성들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경험하는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