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은성 교수(총신대·역사신학)

값없이 주어지는 구원과 생명

 

구속사적 또는 언약 신학적 관점으로 성경을 읽고 해석해야 하는 것은 단순히 성경을 분석하는데 그치는 언약 개념이 아니라 구속 사역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시작, 그리스도의 중보사역, 성례와도 관련을 지어 해석되어야하기 때문이다.

⑴언약에 대한 오해. 흔히들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을 알고 있다. 타락 후의 상태에서 두 언약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실제는 타락전과 후의 상태에서 각각 주셨다. 타락 전의 인간에게 명하신 하나님의 율법이라 할 수 있는 명령이 곧 ‘언약’, 즉 행위언약이다. 그것은 금지된 실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이었다(<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서> 12문). 그 조건은 완전한 순종이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하는 것은 인간의 상태를 간과해 오해하는 언약의 개념에서 벗어나야 하고, 언약은 아담에게만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주어진 영원한 명령이었다는 것이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7장 2항). 지금도 행위언약은 여전히 유용하다. 은혜언약으로 대치되었거나 물러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⑵은혜언약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행위언약이 타락 전의 인간의 상태와 관련을 맺는다면 은혜언약은 타락 후의 인간의 상태와 관련을 맺고 있다. 구속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가 구체적으로 은혜언약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행위언약이 인류의 대표인 아담과 맺은 것이라면, 은혜언약은 하나님이시며 인간이신 그리스도와 맺은 것이다. 동시에 타락 전에 맺은 행위언약처럼 타락 후에 맺은 은혜언약은 모든 인류에게도 영향을 끼친다(<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서> 31문). 아담을 통해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다면 그리스도를 통해 그분의 은혜의 말씀을 듣게 된다.

⑶은혜언약의 내용은 값없이 인류에게 주어지는 구원과 생명이다. 영원한 삶을 약속한 언약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또 인류에게 믿음을 요구한다. 곧 신뢰인 것이다. 그분의 말씀, 즉 약속을 인간의 상황 어떤 것보다 더 우위에 둬야 한다. 세상에서 어떤 형편에서 불법과 요령을 요구하든지 간에 그분의 말씀의 진의를 깨달아 시대를 거스를지라도 순종해야 한다. 아무리 좋아 보이는 것이라도 그분의 법을 우선하여 불법을 행해선 안 되는 믿음을 요구하신다. 그렇다고 세상법과 하나님의 법이 충돌이 일어날 때 우선 해야지, 무조건적으로 하나님의 법을 우선순위 하는 자세는 지양되어야 한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 성령의 인도를 받도록 한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7장 3항).

⑷언약의 시행은 순종이라고 하지만 성령의 사역이 아니면 인위적이든 의지적이든 불가능하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하고, 은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령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약속으로 동기부여를 받는데, 그 약속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다. 성령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약속을 기억나게 하신다. 그 약속이 성경에 있기에 성경의 내용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 성경은 언약 중심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칼빈은 <기독교강요> 2권에서 복음을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그분을 보다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 율법을 통해 밝힌다(2권 7장). 율법을 통해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명확히 밝힌다(2권 8장). 그런 후 신구약 성경의 유사성을 설명하기 위해 ‘언약’이란 개념을 소개한다. 구약에서든 신약에서든 언약이란 관점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2권 10장). 하지만 언약의 집행에 있어 다소간 형식적인 차이점이 있다(2권 11장;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서> 35문). 구약성경에서는 각종 희생 제사로 나타나더라도 신약시대에 그리스도의 희생과 늘 관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7장 5~6항). 형식에서는 다소간 차이가 있어도 내용은 항상 그리스도 중심임을 잊어선 안 된다.

⑸인간과 맺은 언약은 성례로 나타난다. 중생되었다고 확신의 회개를 행하는 자는 세례를 받기에 이른다. 수세자의 확신은 자녀에게까지 전달되기에 자신의 신앙고백으로 자녀에게 유아세례를 받도록 한다. “성례는 그분의 교회 안에서 은혜언약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그분의 중재의 혜택들을 상징화 하고, 인치고 그리고 나타내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거룩한 규례다”(<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서> 162문). 성찬을 통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자임을 늘 기억하게 된다. 언약을 맺은 것을 늘 기억하는 자는 그분의 말씀에 늘 관심을 가질 것이다. 구체적으로 무슨 약속이 주어졌는지를 아는 것이 삶에 힘이 되고 순종하는데 적극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⑹칼빈은 언약이란 단어를 신구약성경의 유사성을 설명할 때 사용한다(2권 10장). “세상 창조부터 하나님께서 자신의 특별한 백성으로 선택한 모든 자가 현재 우리와 동일한 조건으로 또 동일한 교리 하에 그분과 언약을 맺었음이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조상들은 동일한 후사로 우리와 함께 참여하였고 동일한 중보자의 은혜로 공통의 구원을 바랐기에 그들도 우리와 동일한 신앙과 경건에 관한 법을 가진 것이 틀림없다”고 말하는 것이 언약에 관한 서언이면서 결론이라 여긴다(2권 10장 1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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