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복 목사(남현교회)

다름을 인정하고 용납할 때 하나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한 지체, 겸손하고 온유하며 오래 참아야 합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엡 4:2)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를 향해 하나 될 것을 권면합니다. 교회가 하나 되고, 성도가 하나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 됨의 원리’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 될 수 있을까요? 2절 말씀을 통해 네 가지를 찾아보겠습니다.

 
겸손해야 하나 될 수 있습니다.

겸손이 무엇일까요? 자세를 낮추는 것입니다. 상대를 섬기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낮아져야 합니다. 우리 주님도 자신을 낮추시고 종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예수님처럼 겸손하다면 문제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서로가 나보다 남을 낳게 여기고 존경하고, 상대방을 높여준다면 무슨 문제가 생길까요? 문제는 서로가 높아지려는데 있습니다. 기독교의 덕목 중 가장 큰 덕목은 겸손입니다. 겸손한 인격만 가진다면 온 성도들이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온유해야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온유가 무엇일까요? “자신이 가진 힘을 감정대로 쓰지 않고 절제하는 것”이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까지 온유하셨습니다. 그분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말씀 한 마디면 자신을 박해하는 자들을 멸절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온유하심으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온유의 반대말이 무엇일까요? 혈기입니다. 교회에서는 혈기라는 단어 자체가 없어져야 합니다. 어떻게 서로가 얼굴을 붉히고 큰소리치는 이런 일이 교회에서 일어날 수 있을까요? 성도들이 서로가 온유하면 분열될 수 없습니다.
 
오래 참아야 하나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은 오래 참습니다. 왜 믿음은 오래 참을까요? 하나님을 믿되 확실히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그분이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신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내가 직접 나서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에 인내할 수 있습니다.

워치만 리라는 신학자가 있습니다. 그의 신학 사상은 잘못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본받을 점이 있습니다. 그가 쓴 책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중국 농촌에 교회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신자가 계십니다. 어느 날 자기 논에서 물이 자꾸 줄어드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상하게 생각하고 알아보니 옆의 논 주인이 자기 논에서 몰래 물을 빼가는 것입니다. 그는 비록 초신자였지만 이렇게 생각합니다. “믿는 사람이 싸워서야 되겠는가? 속상하지만 참고 원상태로 회복시켜 놓아야지!” 그리고는 원상태로 만들어 놓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그 이튿날 옆의 논 임자가 또 다시 수로를 돌려놓은 것입니다. 분노가 생겼지만 “믿는 사람이 이래서야 되나!”생각하고 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주님! 저 사람은 나쁜 일을 했고, 나는 올바른 일을 했는데, 왜 내 마음 속에 평안이 없습니까?” 그리고 계속해서 기도했는데 응답이 옵니다. “너는 올바른 일을 위해서만 살겠느냐? 그 이상으로 살수는 없겠느냐?” 그래서 그 뜻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깨달음이 옵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일찍 일어나 곧바로 논에 갑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수로를 돌려놓기 전에 자기가 먼서 자기 논의 수로를 이웃 논으로 돌려놓습니다. 얼마 후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옆 논 임자가 그를 찾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용서를 빌면서 고백합니다. “당신은 정말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제가 그렇게 나쁜 일을 했는데도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도리어 저를 배려해주기까지 했습니다. 저도 당신처럼 예수 믿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자의 삶의 목표는 단순히 올바른 삶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신자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내가 바르게 사는데 왜 간섭하느냐? 내가 법대로 하는데 무엇이 문제냐? 내가 올바르게 살기 때문에 당신이 고쳐야 한다”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올바르게 사는 것 그 이상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교회가 하나 될 것이며, 은혜가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서로 용납해야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하나 되기 위해서는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하라는 권면입니다.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교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 되기 힘듭니다. 그러나 아무리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해도 사랑 가운데 용납하면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제가 교육전도사로 사역할 때입니다. 후배 전도사님이 자기 교회에 와서 청년 세미나를 인도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제가 전도사가 된 후 처음 세미나 강사로 초청 받은 것입니다. 그 때는 전혀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극구 사양을 했는데 계속 와야 한다고 고집합니다. 나중에는 자기가 기도해서 응답받았다고 강권해서 할 수 없이 허락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허락은 했지만 사실 저는 아무 것도 몰랐고 매우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여기 저기 자료를 모았습니다. 그리고 청년들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분야의 강의를 준비했습니다. 청년들의 이성관, 직업관, 교회관, 사회관, 국가관 등 여러 주제를 준비했고 열심히 강의 연습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날짜가 되어 그 전도사님 시무하고 있는 교회에 갔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들어가자마자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준비한 것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입니다. 그 전도사님이 찬송을 인도하시는데 얼마나 뜨겁게 인도하시는지 강대상이 깨질 것 같습니다. 강대상에 있던 물 컵이 바닥에 떨어져 박살이 났는데도 계속 찬송을 인도합니다. 그 때 저는 교회에서 박수치는 것조차 이상하게 생각할 때입니다. 그런데 북까지 힘차게 치면서 찬송을 합니다. 당시는 드럼이 없었기 때문에 북을 치면서 찬송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주여, 주여” 부르짖는데 교회가 떠나갈 것 같았습니다. 그때 저는 너무 당황해서 “내가 잘못 걸렸구나. 내 믿음과 전혀 안 맞는 교회인데 어쩌면 좋은가?”라 생각하고 몰래 도망오고 싶었습니다. 제가 준비한 내용은 조용히 들을 수 있는 강의형식이었는데, 이렇게 뜨겁게 찬송하고 뜨겁게 기도합니다. 성령의 은사 받기를 추구하는 집회였던 것입니다.

그때는 준비한 강의안 외에 다른 내용으로 설교 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설교 시간은 다가 왔고 할 수 없이 제가 준비해 가지고 간 말씀들을 전했습니다. 저는 ‘아멘’을 시킬 줄도 몰랐고, 그저 준비한대로 강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강의식 설교를 해도 그렇게 뜨겁게 받아 들입니다. 그리고 말씀증거 할 때마다 ‘아멘’ 소리가 진동합니다. 그날 저는 평범하지만 매우 중요한 사실을 깨닫고 배웠습니다. “나와 다르다고 틀린 것은 아니구나! 나와 다른 것까지 인정할 때 큰 역사를 이룰 수 있구나!”

왼손잡이 보다는 오른손잡이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른손잡이가 많다고 오른손만 바른 손은 아닙니다. 오른손잡이는 오른손이 바른 손이지만, 왼손잡이는 왼손이 바른 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인정해 줘야 합니다. 교회마다 분쟁이 있고 분열이 있는 이유가 어디 있을까요? 나와 다른 서로를 인정해 주지 못하고 용납하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내 믿음의 형태가 중요하다면 다른 사람 믿음의 형태도 중요합니다. 내 은사가 중요하다면 다른 사람의 은사도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전면에 나서지 않고 조용히 예수를 믿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전면에 나서서 적극적으로 봉사하며 예수를 믿습니다. 서로를 인정해야 하는데 서로를 비판합니다. “아니! 저 집사님은 믿음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믿은 지 몇 년인데 봉사도 하지 않고 예배만 참석하나! 저런 사람은 집사 자격도 없지!”

또한 조용히 믿는 사람이 열심히 믿는 사람을 비판합니다. “예수를 믿으려면 좀 조용히 믿지, 저렇게 난리법석을 피우며 믿어야 하나? 우리 교회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저렇게 앞에 나서서 난리야.” 이것은 서로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믿음의 형태가 다를 뿐입니다. 내가 내 기준에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필요 없이 부른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고 용납할 때 교회가 하나 되는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교회가 하나 되길 원하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될 수 있을까요? 네 가지 비결을 배웠습니다. 겸손입니다. 온유입니다. 오래 참음입니다. 서로 용납함입니다. 여러분 옆에 있는 분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한 지체들입니다. 서로 인사 나누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한 몸입니다. 우리는 한 지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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