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시대적 물음에 무엇이라고 답해야 하나? 성도들이 “이슬람과 퀴어축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냐”고 질문할 때 뭐라고 할까? 거센 파도처럼 밀려오는 동성애 물결, 로마 가톨릭 영세 논란, 메시아닉 유대교에 대한 성경적 대답은 무엇일까? 총회 신학부(부장:김문갑 목사)가 개혁주의 신학대회를 진행하면서 성경적인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3월 9일 대전새로남교회에서 열린 첫 번째 신학대회 강의를 정리한다. 개혁주의 신학대회는 호남지역(4월 5일 정읍성광교회) 수도권(5월 23일 왕십리교회) 영남지역(6월 21일 대구범어교회)에서 총 4차례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다.  <편집자 주>
 
▲ 박용규 교수

총회는 2014년과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로마 가톨릭의 영세를 인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한국 개신교로서는 처음으로 로마 가톨릭 영세를 인정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며, 이것은 지금까지 로마 가톨릭 영세를 인정해오던 한국교회의 전통에 변화를 의미한다. 이같은 결정에 따라 과거 로마 가톨릭교회 교인이었던 사람들은 본 교단에서 신앙생활을 하려면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

세례와 성찬은 주님이 제정하신 교회의 제도이다. 세례는 주님께서 마지막 지상 명령으로 명하신 말씀대로 복음을 전하고 믿는 자들에게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이름으로 물로 베푸는 것이다.

개혁주의 전통에서 참된 교회는 말씀이 선포되고 성례(세례와 성찬)가 시행되며, 권징이 시행되는 것을 교회의 표지로 삼았다. 따라서 성례는 교회의 참된 표식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라 할 수 있다.

세례의 타당성 논쟁은 초대교회 때부터 깊이 있게 논의되었다. 411년 칼타고회의 때 도나투스파들은 기성교회 목회자들이 박해 기간에 배도를 했기 때문에 배도를 한 목회자들이 시행한 성례를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반해 어거스틴은 세례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집례되었다면 그 세례의 유효성은 세례를 베푸는 자의 자격 유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기원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 타당성을 지닌다고 주장했다.

종교개혁 당시에도 재침례파를 제외한 칼빈과 다른 종교개혁자들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세례를 인정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도 로마 가톨릭의 문제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재세례에 대해서는 상당히 조심스러운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반면 천주교 영세의 타당성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본질적으로 교황을 머리로 하는 천주교가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복음에서 변질된 교회이고, 그들의 가르침이 심각하게 오염된 이상 그들이 시행하는 영세를 기독교회의 세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한다.

이들은 특히 로마 가톨릭의 트렌트 공의회(1545~1563) 결정이 성경과 역사적 기독교 가르침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영세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 트렌트 공의회 이후 로마 가톨릭은 교회론은 물론이고 칭의론, 성경관, 교황 무오설 등 여러 가지 교리들이 더욱 성경에서 멀어진 방향으로 갔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어긋난다고 한다.

하지만 로마 가톨릭은 트렌트 공의회 이전에도 면죄부를 비롯한 수많은 잘못된 교리들과 성상숭배 등의 문제점을 보였다. 따라서 트렌트 공의회를 기점으로 그 전의 영세는 받아들이고, 그 이후에는 안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19세기 미국 장로교들은 1835, 1845, 1871, 1879, 1884, 1987년에 걸쳐 로마 가톨릭 영세의 타당성을 인정하지 않는 결정을 내렸다. 반면 화란과 독일 등 유럽의 개혁교회들과 장로교회들은 영세를 인정해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2013년 PCUSA, RCA, CRC, UCC (PCA 제외) 등 미국 개혁주의 장로교단들은 영세를 인정하는 문서에 서명하면서 기존의 입장에서 선회하고 있다. 조심스럽지만 이같은 변화는 WCC 에큐메니칼운동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

오늘날 개혁주의 장로교회 안에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영세를 인정하는 경향이 지배적인 것이 사실이며, 이같은 움직임은 앞으로 더욱 강하게 일어날 것으로 예견된다.

▲ 길원평 교수

동성애 옹호자들은 동성애 인정이 세계적 추세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78개 국가는 동성애를 불법으로 간주하고 처벌하고 있다(2012년). 또한 세계적으로는 17개 국가만이 동성결혼을 합법화하고 있다(2015년). 한국의 경우, 2013년 미디어리서치 조사 결과 국민의 73.8%, 동아일보 조사 결과 78.5%가 각각 동성애는 비정상적 사랑, 동성애자에게 거부감이 든다고 답했다.

1948년 킨제이는 미국 남성의 10%가 동성애라고 했다. 그러나 킨제이는 의도적으로 동성애의 비율을 높이기 위해 남성매춘부, 성범죄자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조작된 조사이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다.

반면 2013년 미국 질병통제센터에 따르면, 미국 국민의 1.6%가 동성애자이고 양성애자는 0.7%였다. 이밖에 캐나다와 뉴질랜드 등의 조사 결과도 비슷하다. 한국의 경우, 한국성과학연구소(2011년)에 따르면 동성애 비율이 0.7%에 불과했다.

동성애 옹호자들은 동성애가 유전이라면서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과학적으로 틀린 것이다. 만약 동성애를 유발하는 유전자가 있다면 나이가 들어도 감소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동성애자는 20대에서 50대로 넘어가면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이는 동성애가 유전이 아님을 나타내는 증거다.

또한 동성애가 유전이라면 일란성 쌍둥이의 동성애 성향도 일치해야 한다. 그러나 베일리가 2000년도에 호주의 일란성 쌍둥이를 조사한 결과 12.35%였고, 2010년 스웨덴의 결과도 11%였다. 동일한 유전자를 가지고도 일치비율이 10%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유전자나 태아기의 호르몬에 의해 동성애가 결정된다는 주장이 틀렸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오히려 동성애는 사회적인 영향이 더 크다. 동성애자들은 이성애자들보다 어릴 때 성적 또는 신체적 학대를 받은 사례가 1.6~4배 많다는 보고가 있다. 어릴 때 약물중독, 부모 별거 등 가족 단위의 어려움이 영향을 주기도 한다. 기숙사나 교도소, 군대에서 우연히 경험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동성애를 미화하는 영화나 포르노 등의 문화가 동성애 형성에 영향을 준다.

동성애와 에이즈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11년 미국 질병관리본부에 의하면, 13~24세 남성 에이즈 감염자의 94~95%가 동성애로 감염됐다. 캐나다에서도 남성 신규 감염자의 75%가 남성동성애집단이다.

한국의 경우, 정부가 동성애와 에이즈의 관계를 밝히기를 꺼리고 있다. 그러나 2011년 정부의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남성 동성애자간 성접촉이 (에이즈) 주요 전파경로인 것으로 인정된다”고 밝히고 있다.

동성애는 유전도, 치유불가능도 아니다. 오히려 동성애는 비정상적이며, 에이즈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불행하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또한 차별에는 나쁜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고 윤리적인 구별도 포함됨을 알려야 한다. 동성애가 차별금지법에 포함되는 것을 반대하는 이유는 동성애에 대한 윤리적인 구별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대다수 국민의 건전한 성윤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동성애가 차별금지법에 포함되면 안된다. 국회의원들을 설득하여 동성애 옹호법(차별금지법, 생활동반자법)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하고, 이미 만들어진 동성애 옹호법(인권위법)을 개정하도록 해야 한다.

동성애는 하나님이 금지한 분명한 죄악이다. 지금은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통해 쉽게 음란물을 접할 수 있다. 따라서 신앙인들이 경건한 본을 보이면서 다음 세대를 진정한 의인으로 만들어야 한다. 경건함을 회복하면 동성애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

▲ 정형남 선교사

메시아닉 유대교(Judaism)는 1960~1970년대 사이에 일어난 종교운동으로 생긴 종파이며, 복음주의 기독교와 유대교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인다. 2003~2007년까지 메시아닉 유대교 예배당은 미국에서만 150→438개, 이스라엘에서 100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신자는 2008년 미국에 25만명, 이스라엘에 많게는 1만5000명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메시아닉 유대교와 그로 대표되는 예수살렘·이스라엘 중심적 기독교에 따르면, 나사렛 예수가 메시아로 강림했지만, 그 왕국와 성전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회복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일은 예수의 재림 때 이우러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천년론적(현천년론적) 개혁·언약 신학에 기초한 기독교에 다르면, 초림 예수를 통해서 메시아 왕국과 성전의 재건이 이루어짐으로 이스라엘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교회가 메시아 왕국이며 메시아 성전이기 때문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곧 회복되고 있는 이스라엘이다. 그 회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시작됐고, 그의 재림으로 완성된다.

△이스라엘이 건국되었다(1948년). △이스라엘이 동 예루살렘을 요르단으로부터 탈환했다(1967년). △예루살렘의 성전터에 제3의 유대교 성전이 건축될 것이다(미래). 이 세 가지는 성경예언의 성취인가? 메시아닉 유대교와 그로 대표되는 세대주의에 기초한 기독교에 따르면, 그렇다. 그러나 개혁·언약 신학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성경예언 성취의 진정한 주인공은 야곱의 혈통적 후손들이 이스라엘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보혈로 구속함을 받은 교회이기 때문이다.

메시아닉 유대교는 개혁·언약 신학을 대체신학이라고 비판한다. 이들은 비판 수위를 높여 마귀의 역사라고까지 주장한다. 그러나 개혁·언약 신학은 결코 대체신학이 아니다.

사실 ‘대체 제물’의 개념은 유대교와 이슬람교, 기독교에 모두 있다. 대체 제물의 정체는 두 뿔이 숲에 걸린 숫양이다. 그 제물은 하나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유대교는 그림자에 대한 실체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 이슬람교는 그림자를 모방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 대체 제물의 실체가 되신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보혈로 구속함을 받은 교회도 실체가 된다.

유월절 떡과 음료는 그림자일 뿐이며, 유월절 어린 양으로 죽임을 당하신 예수님이 그 실체다. 유대교의 3대 명절(축제)과 축제와 관련된 것들은 각각 그림자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실체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개혁신학은 대체신학이 아니라 실체신학이다. 안타깝게도 유대교는 그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실체인 그의 교회를 아직도 모르는 가운데, 그림자만 붙잡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메시아닉 유대교는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유대교와 함께 그림자를 붙잡고 있다.

또한 개혁·언약 신학은 대체신학이 아니라 성취신학이다. 야곱과 그의 혈통적 후손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보혈로 구속함을 받은 교회로 대체된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는 구약 말씀을 성취한 것이다. 특별히 초림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처럼 세 번에 걸쳐 등극식의 주인공이 되심으로 구약을 성취하셨다.

성경예언 성취의 진정한 주인공은 야곱과 그의 혈통적 후손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 공동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신학은 대체신학이 아니라 성취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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