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은성 교수(총신대·역사신학)

참으로 그분은 영이시다!
 

인생의 목적과 성경을 다룬 기독교 교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 대해 고백한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얼마나 알 수 있을까? 자연과 양심을 통해 ‘신성에 대한 인식’을 가질 수 있지만, 구원에 관하여는 성경 외에 그 어떤 것도 가질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다. 하나님에 대해 당연히 알아야 하지만, 죄성을 가진 인간은 자기 해석이나 상상에 치우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또 성경의 진리에 어긋나거나 지나치는 이유는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의 불충분에서 비롯된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의 상호관계는 칼빈 선생의 <기독교강요> 1권 1장 1항에서 밝힌 이중지식에서 엿볼 수 있다. 둘 중 우선순위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다. 이 지식을 소유하는 즉시로 우리는 자신에 대한 지식을 가지게 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자기 해석이나 상상에 치우치게 된다. 동시에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을 가지게 되면 그분에 대한 지식을 그만큼 알기에 이른다. 이 과정은 또다시 그분에 대한 지식에서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으로 나아가는 것이 계속 된다.

이런 면에서 <벨지카 신앙고백서>는 1항에서 하나님에 대한 고백으로 시작한다. 이것을 보완이라도 하듯이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 9째 주간 26문에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다루기 전, 1째 주간 2문부터 8째 주간 25문까지 인간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다룬다. 그 후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자세하게 다룬다.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대·소교리문답서>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성경을 다룬 후 이중지식을 순서대로 고백하고 있다. 큰 항공모함을 움직이듯이 총체적 진리를 설명함에 있어 칼빈 선생은 <기독교강요> 1권 1~5장에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서론을 밝힌 후 성경에 관해 설명한다.

그러면 개혁신앙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어떻게 설명할까? <웨스트민스터 대·소교리문답서>는 하나님의 속성, 삼위일체, 작정, 창조 및 섭리의 순서를 밟는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 9~10째 주간(26~28문)에서도 이 순서를 따른다. 또 <벨지카 신앙고백서>는 1항에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고백하고 2~7항까지 성경에 대해 충분히 설명한 후, 8~13항까지 하나님에 대해 고백한다. 그 고백에서도 역시 먼저 삼위일체, 창조 및 섭리 순서를 밟는다.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설명은 칼빈의 <기독교강요> 1권을 구성한다.

개혁신앙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속성에 관해 간략하게 생각해보자.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서> 각각 7문과 4문은 “어떤 분인가?”를 질문하면서 여러 속성들을 열거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속성은 하나님께서 ‘영’이시라는 것이다. 이는 “그 분을 어떤 형상으로 또는 가시적으로 그리든지 또는 만들어서는 결코 안 된다”는 의미다(1권 11장 1항). 또 <벨지카 신앙고백서> 1항은 “우리 모두가 심정적으로 믿고 입술로 고백하는 것은 유일하시고 단일하신 영적 존재가 존재한다”고 고백한다.

참으로 그분은 영이시다! 이것은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 없고, 지성으로 상상할 수 없는 분임을 분명히 명시하는 선언이다. 이것을 간과했을 때 우상숭배와 미신신앙으로 빠지거나 그 분의 섭리와 예정에 대해 제멋대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그릇된 신앙을 가진 수가성 여인에게 예수님은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것이라고 권하신 것이다(요 4:23).

개혁신앙이 신뢰하고 찬양하는 하나님에 대한 속성들 중 주요한 맥을 말하도록 하겠다. 먼저 <기독교강요> 1권 10장 1~3항에서 칼빈 선생은 “성경이 하나님을 계시할 때 자신이 누구신지 말씀하시는 것보다 우리를 향해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한다(1권 10장 2항; 참고로 1권 2장 2항; 3권 2장 6항). 둘째, “우리는 그분이 누구신지보다 우리에게 어떤 분이신지를 알 뿐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셋째, “성경 어디서든 하나님의 부성적 선하심과 자비로우신 의지를” 파악해야 한다(1권 10장 1항). 그런 후 칼빈은 1권 10장 2항에서 하나님의 속성을 하나씩 설명해 간다.

다음으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중생된 자에게 필연적 지식이며 영생이다(요 17:3). 그 지식은 우리를 향한 그분의 선하심 또는 자비함을 의미한다. 이 지식은 창세기 1장 창조의 역사에서부터 시작된다. 이것은 우리 삶을 통해 체험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누구냐?’ 질문이 아니라 ‘어떤 분이냐?’로 물어야 한다. 또 교리에 열거된 속성의 항목들을 통해 하나님을 구상해서도 안 된다. 그분은 영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신을 생각한다면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 접근하는 준비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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