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왕 목사(수원제일교회)

‘처음 사랑’ 회복은 최고의 가치입니다
사랑을 회복하면 복음의 능력으로 은혜와 기쁨도 회복됩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5)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 중에 ‘본질과 비본질’이라는 말처럼 사람이 하는 일에도 ‘보다 더 가치 있는 일, 무가치한 일’이 있습니다.

물론 상대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은 저마다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서도 다를 수 있겠지만,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 없이 귀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그것을 바로 깨달을 때 상대적인 가치관에 휘둘려 후회스러운 삶을 살지 않고 변함이 없는 가치를 추구하며 행복한 신앙인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시는 가치 있는 삶은 어떤 것일까요?
 
에베소교회는 소아시아 최초 7교회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도바울은 전도 여행을 하면서 이곳을 세 차례 머물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사도의 3차 전도 여행 때에는 에베소 지역에 있는 두란노 서원에 2년간 머물며 말씀을 전하고 가르쳤습니다.

바울사도가 에베소교회를 얼마나 사랑하고 소아시아 복음화의 전초기지로 삼으려고 했는지 믿음의 아들 같은 수제자 디모데에게 에베소교회를 위임하여 목회하게 한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에베소교회는 진리를 지키기 위한 싸움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는 교회였습니다(계 2:2~3). 이단이 감히 진리를 왜곡시키지 못하도록 지켰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위해서 어떤 고난도 견디고 인내했습니다. 복음을 위한 수고와 열심이 특출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이러한 에베소교회는 어떤 교회보다 말씀 위에 온전히 서 있는 듯 보이지만 하나님은 에베소교회를 향해 무서운 경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5 하)

이를 쉽게 말하면 더 이상 교회로서 존재하지 못하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왜 이런 말씀을 하신 걸까요? 바로 “처음 사랑을 버린 것” 때문입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 2:4)

에베소교회가 이단 사설의 도전 앞에 진리의 말씀을 견고히 지키고 주를 향한 특별한 열심을 가지고 게으르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사역하고 있는 교회였으나 무엇보다 소중한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바로 이것이 에베소교회의 촛대를 옮기시겠다는 이유였습니다.

그 같은 에베소교회는 오늘의 한국 교회와 너무나 흡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교회 안에 이단이 틈타지 못하도록 경계를 늦추지 않고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싸움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도 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장점이 많고 성경적인 교회입니까?

그러나 교회는 그 무엇보다 사랑이 풍성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에베소교회는 그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진리를 위해 싸우다보면 옳고 그름을 정확하게 분별하고 진리를 고수하다보면 사랑이 설 자리가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교회는 당연히 진리를 지켜야 합니다. 이단의 왜곡된 말씀과 개인의 판단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선시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옳고 그름을 위해 싸우고 하나님을 위한 열심과 많은 사역 때문에 주변을 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어도 결코 사랑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진리를 지키겠다고 사랑을 소홀히 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게는 ‘공의와 사랑’이 항상 균형을 이루며 공존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공의를 위해 사랑을 희생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사랑을 지키기 위한 방편이었습니다.

기독교 진리의 중심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성장한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사랑’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 거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사랑하는 자가 됩니다. 성령의 열매로 사랑이 그 안에 회복됩니다(갈 5:22).

첫째는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사랑하고, 둘째는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합니다(마 22:37~40; 막 12:28~31; 눅 10:27).

과연 이것을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요? 교회는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한 그의 백성들이 한 몸을 이룬 유기적 공동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옳고 그름이라는 정의 때문에 간음한 여인을 돌로 쳐서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지만 죄인들이 영원히 멸망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셔서 대속의 죽음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해 주셨습니다(요 3:16; 롬 5:8).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세워졌습니다. 십자가는 공의와 사랑이 교차로입니다. 진리와 사랑이 함께 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세상은 교회를 조롱하고 부정하고 공격합니다. 세상이 교회를 핍박하고 외면하는 첫 번째 이유를 사랑 없음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교회가 대외적으로 사랑을 베풀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교회 안에도 끊임없는 다툼과 분열과 부정직한 일들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이 없는 교회를 외면하기 전에 세상이 먼저 사랑이 없는 교회를 부정합니다.

미국 해외선교센터가 2015년 1월 발간한 국제선교통계보고서에서 전 세계 73억 인구 중에서 기독교인의 숫자가 불교나 힌두교나 심지어 17억명의 이슬람보다 훨씬 더 많은 24억명으로 열 명 중 3명이 기독교인이라고 발표하였습니다.

세계 모든 기독교인들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다 똑같은 성경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마다 식성이 다르고 취미가 다른 것처럼 사람마다 성경 가운데 특별히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그 중에 100개를 골랐는데 그 중에 제일 좋아하는 성경구절은 요한복음 3장 16절이고 두 번째 성경 구절은 예레미아 29장 11절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그렇다면 왜 세계 모든 기독교인들이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을 제일 좋아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 때문일까요?

첫째로 우리가 구원을 얻은 것은 우리의 선한 행실 때문이 아니고 그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구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지식이 발달하고 경제가 성장할수록 미움과 시기와 불평과 폭력과 살인과 테러가 점점 늘어가는 세상에 가장 절실한 것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교회는 무엇보다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단순히 회복하는 차원이 아니라 처음 사랑을 회복하여 사랑이 풍성한 교회가 되게 해야 합니다.

첫째, 사역자들이 처음 사랑으로 사역하면 교회는 풍성한 사랑을 소유하게 되고 우리의 예배와 사역도 완벽히 회복될 것입니다. 사랑을 회복하면 은혜와 기쁨도 회복될 수 있습니다.

둘째, 성도들이 처음 사랑을 회복하면 가정들은 화목하게 되고 교회와 같은 가정이 되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셋째, 교회가 처음 사랑을 회복하면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서 활발한 전도와 선교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바로 그 처음 사랑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 사랑이고 십자가에 피 흘리신 십자가 사랑이고,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 제일 첫 번째 열매입니다. 하나님이 영원하시듯이 처음 사랑은 영원히 추구해야 할 절대가치요 그것을 위해 불쏘시개와 같은 우리의 시간과 물질과 노력을 다 쏟아 불살라도 결코 아깝지 않은 최고의 가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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