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남 선교(GMS 중동지역장·이슬람네트워크대표)

이슬람의 수니파 무장 단체인 IS에 의하여 끔직한 테러가 파리에서 발생하여 프랑스를 비롯한 주변 나라들에 초비상이 걸렸다. IS는 ISIL, 즉 “이라크·‘레반트’ 이슬람 국가”(Islamic State in Iraq and Levant)에서 비롯된 것이다. ‘레반트’는 지중해 동부 연안에 위치한 시리아를 비롯한 레바논과 요르단과 팔레스타인을 아우르는 지명이다. 이라크와 ‘레반트’는 이집트와 더불어 초대교회부터 시작되었던 기독교 역사가 이슬람의 방해를 받지 않고 오늘까지 계속되어 왔다. 그런데 이제 IS에 의하여 이라크와 시리아의 기독교 공동체에 큰 위기가 닥치고 있다. 튀니지아에서 시작된 이른바 아랍의 봄이 시리아와 이라크에 도착하였는데, 그 결과가 수니파 무장 단체 IS의 출현이다. 이라크와 시리아의 기독교의 입장에서 보면 봄이 아니라 혹독한 한파를 몰고 온 겨울이 된 셈이다. 그런데 그 한파가 온 세계를 향하고 있다.

미국 풀러신학교의 전 총장 리차드 마우어는 미국의 이라크 전쟁(2003년)이 초대교회부터 계속되어 온 이라크 기독교 공동체의 뿌리가 흔들리도록 한 사건이 되었다고 지적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아직까지 건재하다면, IS는 결코 등장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는 수니파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뿐만 아니라 미국의 절대적인 후원을 받는 가운데 시아파의 맹주인 이란과의 전선에서 첨병의 역할을 감당하였다. 그는 외무부 장관 및 부총리로 기독교인 타리끄 아지즈를 세웠고, 이라크 교회의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아주 잘 하고 있었다. 그가 독재자로서 많은 악행을 저질렀지만, IS와 같은 테러집단이 출현하지 못하도록 하고, 기독교가 이슬람의 방해를 받지 않고 계속 존재하도록 나름대로의 역할을 톡톡하게 하여 왔다. 그 점에 있어서 시리아의 아사드와 바샤르 부자, 그리고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도 마찬가지였다. 이집트 기독교인들이 무슬림 형제단 출신의 무함마드 무르시 대신에 호스니 무바라크 지지자인 엘시시가 권좌에 오른 것을 크게 기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왜 미국은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였을까? 시아파 이란과의 전선에서 수니파의 첨병으로서의 그의 긍정적인 역할보다는 대 이스라엘 전선의 앞잡이라는 그의 부정적인 역할이 더 큰 문제가 된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었다. 찰스 다이어는 그의 책 표지에 ‘느브갓네살 동상 앞에서 군복을 입고 있는 후세인’을 보여주는 <바벨론 부활의 징조>라는 책을 출판하였다(1991). 그는 그 책에서 ‘큰 성 바벨론’(계18:2)을 사담 후세인을 통해 건설되는 이라크로 해석하며, 바벨론이 아마겟돈의 마지막 전투 이전에 다시 건설될 것이라고 주장하였고, 적지 않은 미국교회들이 그에 동조하였다.

사실 IS의 잔악함을 통하여 이슬람의 실체를 깨닫게 된 자들 가운데 탈 이슬람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금년 초에 리비아의 IS에 의하여 콥트교회 성도들이 순교를 당하였을 때, 영국 콥트교회 앙가엘로스 총주교는 IS에 대한 최고의 무기는 용서라고 하였다. 세계의 무슬림들이 큰 충격을 받았고, 그들 중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품으로 들어오는 자들이 적지 않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유대교와 이슬람에 속한 자들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 우리의 사랑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들인 “유대인들의 충만한 수”(롬 11:12)와 이스마엘의 후손들로 대표되는 “이방인들의 충만한 수”(롬 11:25)가 통합되어 “온 이스라엘”이 완성될 때까지(롬11:26),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 되어야 한다.

필자는 요르단에서 시리아의 내전을 피하여 온 기독교인들과 야지드인들과 이라크에서 IS로부터 쫓겨 나온 기독교인들과 더불어 교회를 이루고 있다. 사실 그들 중의 대부분은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런데, 교우들의 가족과 이웃들 중에는 순교자들도 탄생되었다. 우리는 파리 테러의 희생자 가족을 위하여, 이라크와 시리아 땅에 독버섯과 같은 IS의 뿌리가 뽑히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공동체가 다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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