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수 목사(부산성지교회)

지역사회란 인간관계에 의해 또는 지리적 행정적 분할에 의해 나누어진 일정 지역의 사회를 말한다. 도시가 발달하기 이전에는 강 또는 산을 경계로 하여 형성된 마을을 하나의 지역사회로 보았고, 마을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갔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한 마을 안에서 사회, 경제, 문화, 교육, 행정, 치안 등의 모든 분야를 감당하고 처리하게 되었다. 즉 마을 어르신들이 교육관이요, 행정관이요, 법관이 되어 마을 전반에 걸쳐 생겨나는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는 형태를 이루었다.

그러나 사회가 점점 발달하고 성장하면서 전문적인 교육, 행정, 사법 등의 기관들이 등장하고 전문직 종사자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지역사회라는 의미가 무색하리만큼 개인주의적, 이기주의적으로 변하여 공동체의식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사회는 발달하고 성장하고 지역의 구성원들이 수시로 바뀌는 현상이 나타나도, 예전의 마을공동체로부터 오늘날의 다변화하는 지역사회에 이르기까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법’이라는 것이다. 법은 사회가 아무리 변하여도 바뀌지 않는다. 즉 지역사회의 뿌리요 바탕이요 기준이 되는 것이 법이다.

법원은 지역사회의 테두리 역할을 하는 ‘법’을 다루는 기관으로, ‘법’이라는 명확한 기준을 가짐과 동시에 마을 어르신과 같은 또는 부모와 같은 마음으로 지역사회를 돌아보고 품어야 하는 기관이다.

예전에 법원은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판결’만 하는 곳으로 여겨졌다. 검사는 잘잘못을 가려내고, 판사는 형을 집행하면서 마무리하는 형식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지역사회의 구성원들은 ‘법원’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서운 곳, 두려운 곳, 벌을 주는 곳 등 부정적인 것이 거의 전부였다. 또한 법원에 다녀왔다고, 재판받고 왔다고 하면, 사람들의 시선 또한 곱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법으로 기준을 삼아 지역사회를 깨끗하게 해야 하는 일은 예전부터 잘 해왔던 일이다. 물론 앞으로도 흔들림 없는 명확한 기준으로 지역사회를 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법원의 역할 중에 가장 우선순위는 바로 법기관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다. 그와 더불어서 지역사회가 원하는 법원은 다가가기 쉬운, 그리고 언제, 어느 때라도 고민거리를 말하면 들어줄 수 있는 편안함이 있는 법원일 것이다.

법원이 지역사회와 지역민들과의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다양한 방법과 형태로 다가가는 것은 분명 좋은 현상이다. 그러나 지역사회에 더 다가가고 가까워지기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법 지식을 바탕으로 다방면에서 접근할 수 있는 법조인들이 필요하다. 이미 법원의 문턱은 점점 낮아지고 낮춰지고 있다.

법원의 문턱을 낮춘다고 지역사회가, 지역주민이 먼저 찾아오지는 않는다. 고민이 있을 때,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 부담 없이 찾아가서 상담할 수 있고 조언을 구할 수 있는 부모와 같은, 마을 어르신과 같은 푸근함이 있는 소통하는 법원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가 속한 노회에서 지교회 모 집사가 작심을 하고 상습적으로 담임목사를 수차례 검찰에 갖가지 죄목을 붙여서 고소하는 사건이 있었다. 결국 노회에서 조사처리위원을 내고 재판국을 설치하여 위탁 판결을 통해 교회의 평안을 찾아준 일이 있다. 그러자 모 집사는 재판국 판결의 무효를 주장하며 법원에 재판을 요구함과 동시에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검찰에 소를 제기하는 일이 있었다.

작금의 교회나 총회의 모습을 볼 때 마치 사회법이 우리 헌법 보다 우월한 듯 세상법에 판단을 맡기고 그 결과를 아무런 이의없이 받아들이는 개탄을 금치 못하는 형국에까지 와 있다. 교회와 검찰청이나 법원은 출발부터가 다르다. 교회는 말씀으로 출발하고 법조계는 법으로 출발한다. 그러므로 결단코 사회법으로 교회나 총회의 문제를 해결 하려는 태도는 버려야 할 것이다. 더구나 성도들이 헌금한 엄청난 액수를 소송 비용으로 허비 한다니 말이나 될 법한 일인가?

총회의 법도 삼심제가 보장되고 충분하게 모든 충돌과 이견을 풀 수 있는 훌륭한 종교법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오늘도 필자의 귓전에 “왜, 교회와 총회는 무슨 일만 생기면 내부에서 풀지 못하고 사회 법정으로 가지고 오세요?”라던 젊은 판사의 질문이 잊혀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슴이 시리고 아픈 이유는 무엇일까?

요한복음 14장 27절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는 말씀으로 위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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