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자 칼빈은 세계가 신적인 절대 질서 아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신율을 통하여 세상은 통치된다고 생각했다. 기독교가 뿌리요 그 열매라고 생각했던 중세기 군주들은 왕명을 신율로 내세웠다. 하지만 제네바의 개혁자 칼빈의 사상이 퍼진 곳에서는 그런 독재적 발상은 저항을 받아야 했다. 청교도들은 타운미팅(town meeting) 즉 마을회의를 시작하면서 이것이 풀뿌리 민주주의가 되게 하였다. 따라서 영국식 민주주의도 미국식 민주주의도 칼빈의 후예들로 인한 유산이었다.

칼빈주의의 영향은 정치적 측면에서 그 열매를 찾을 수 있다. 혹자는 흔히 민주주의가 고대 그리스의 산물인 것으로 이해한다. 물론 민주주의를 토론과 투표라는 형식에 의해 결정하는 것을 기준으로 본다면 그것은 헬레니즘의 유산인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중심 가치인 인간의 기본적 존엄성과 법 앞에서의 만인의 평등, 압제로부터의 자유에 있다고 규정할 때 이것은 칼빈주의적 사상이 헬레니즘의 가치를 앞서고 있는 것이다.

칼빈의 사상은 경제적 측면에서도 큰 영향을 주었다 칼빈의 이중예정론은 구원 받을 자와 멸망 받을 자가 미리 결정되어 있다는 것인데 구원이 창조주의 절대주권에서 나온다는 사상이다. 따라서 예정의 유무는 사치와 방종이 아닌 청빈과 절제의 열매를 통하여 알 수 있다는 것이 예정론이다. 이러한 사상은 칼빈주의 사상이 지배하던 사회에서는 사치와 낭비가 근절되었고 저축과 근면이 삶의 미덕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칼빈의 자본주의는 배금주의를 배격하면서 축적된 자본을 바탕으로 재투자를 통한 경제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사치를 위한 것 보다는 꼭 필요한 생활용품의 생산을 꾀하면서 상품의 표준화를 낳게 하였다. 이러한 일들은 상품의 대량 생산으로 이어지면서 자본주의 경제 발전으로 그 결실을 보았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베버(Max Weber)는 <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자본주의 발전에 대한 칼빈주의 영향을 피력하고 있다. 베버는 이 책에서 경제가 상업적 요소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간의 신앙과 삶의 태도라는 정신적 요소에 기인한다는 것을 피력하고 있다. 따라서 칼빈의 유산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개신교 나라들에서는 어디고 자본주의 발전을 통한 국부가 왕성하였음을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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