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은성 교수(총신대학교)

그리스도 ‘속죄의 은혜’ 감사하게 해야
평생 죄와 싸우며 믿음의 증거를 가지도록 돕는 설교는 ‘큰 힘’
 

 

평생 성경 66권의 설교가 가능할까?

30년 동안 매주 한 번의 설교를 한다 하더라도 66권 성경 전체를 설교하기란 쉽지 않다. 위대한 선배들을 보더라도 성경 전체를 설교하신 분을 찾기 쉽지 않다. 목회자와 평생 함께 하는 성도들은 성경 전체의 설교를 들을 기회가 과연 있을까? 30년간 매주 한 번씩 설교한다면 1560회 설교하게 된다. 신·구약 성경은 구약성경 929장과 신약성경 260장을 합쳐서 모두 1189장이다. 수적으론 가능하다고 여겨지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성경 전체의 설교를 들어야 복음에 대해 아는 것이 아니지만 그만큼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있어야 다양한 세상의 삶에서 대처할 수 있다.

 
총체적 진리

목회자는 성도들의 영적 양식을 공급하는 자이다. 몸의 건강을 위해 필요한 영양분이 있듯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신자들이 견인 하는데 필요한 영적 영양분이 있다. 그것을 한 마디로 총체적 복음 또는 진리로 표현해 보자. 달리 말하면, ‘기독교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일 수도 있다. 이에 대한 답변으로 목회자가 자신의 성도들에게 평생 가르쳐야 하는 진리의 항목들을 정리해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칼빈 선생의 <기독교강요> 4권 80장의 제목들을 기억한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영국과 미국에서 선호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서>,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서>의 항목들을 기억하는 것도 좋다. 그리고 유럽 대륙의 개혁교회에서 선호하며 흔히 ‘연합의 세 형식’(Three Forms of Unity)으로 불리는 <벨지카 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 및 <돌드레히트 신조> 등도 <기독교강요>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런 항목들에 관해 목회자는 나름대로 참고도서의 도움 없이 자신의 말로 정리해본다. 그 정리된 내용과 위에 소개된 내용들을 비교해볼 때 깊은 의미를 파악하고 설명하기 어렵다면 심각하게 고민하고 연구해야할 것이다.
 

죄와 이기심

성경 진리 또는 교리에서 설교하기 가장 어려운 항목들 중 하나는 죄에 대한 것이다. 죄에 대한 설교가 반복적으로 행해진다면 성도들이 매우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을 직면하게 된다. 그 이유는 대개 성도들이 복에 관한 설교를 더 귀담아 들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복음은 죄에 대한 진리로 시작하고 죄 용서에 대한 확신과 그것에 따른 삶으로 지속하라고 명한다.

66권 성경에 언급된 죄라는 단어에 대해 성구사전을 통해 찾아 그 개념을 조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미 정리된 교리들을 통해 다시 새겨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칼빈 선생의 <기독교강요> 2권 1~5장을 권한다. 이 내용을 반복하여 정리함으로 죄에 대한 개념을 분명하게 또 세밀하게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 개념에 대해 몇 가지를 밝혀보면, “모든 자들이 맹목적인 이기적 사랑을 선천적으로 소유하고 있”고 “스스로 선하고 복된 삶을 성취할 수 있다는 허망한 생각에 잠겨 있”다고 한다(2권 1장 2항). 이러한 인간성은 결국 최초의 인간 아담의 불순종에서 시작한다. 이런 불순종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멸하고 그분에 대한 모든 존경도 사라”(2권 1장 4항)졌을 때 나타났다. 이 영향은 우리 영의 모든 부분에 퍼져 부패시키고 말았다(2권 1장 8항). 죄로 사로잡힌 영의 모든 부분은 저속한 희구들에 미혹되고 혐오스런 불경건이 마음의 성채를 사로잡고 자만이 심정 깊은 곳까지 침입해 들어갔다(롬 7:12).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하려는 영의 기능이 부패해 있기에 모든 사람은 이기심에만 집착해 있다. 하나님의 선하심에 관해 이성이 어느 정도 알 수 있으나, 이기심에 방해가 되는 순간 언제든 등을 돌려 자신에게 익숙한 부패성에 따라 행동하고 만다. 그 이유는 총체적이고 전체적으로 중생하지 않으면 인간은 결코 하나님의 선하심이나 무관하고 구원에 관해서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따라서 중생은 인간 편에서의 어떤 행동을 요구하지 않고 성령 하나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전적인 부패성은 회심하게 되었을 때 의지만 전환될 뿐 지성, 감성, 오성은 여전히 이기심으로 향한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먼저 하나님은 율법을 통해 죄의 현상과 심각성을 늘 깨닫게 하시고, 그것도 부족하면 가시적인 경고와 위협을 가하기까지 하여 그리스도를 향하게 한다. 참되게 회심을 했다면 그 죄와 싸우면서 견인해 간다. 그렇지 않고 구원파의 거짓 교훈처럼 죄의 유혹에서 벗어났다고 말해선 결코 안 된다. 평생 죄와 싸우면서 믿음의 증거를 가져야 한다. 이런 면에서 설교는 큰 힘이 된다.

 
조상들의 죄

성경 전체가 죄와 구원에 대하여 선포하고 있다. 선지자들은 율법의 말씀을 해석하고 당시의 상황에 적용시켰다(2권 7장 1항). 그러면서 회개를 촉구하며 그리스도로 향하도록 했다. 이사야를 비롯한 선지자들은 한결같이 이방나라만 아니라 조상들의 죄에대해 경고했다. 바벨론, 앗수르, 구스, 애굽, 에돔, 모압과 암몬 등에 대한 경고를 통해 죄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보게 한다. 특별히 모압에 관한 경고(사 16장)는 유기된 자에 대한 것이다. 바벨론에 관한 경고는 아하스를 비롯한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 외에 외적 세력에 의존하는 데에 대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조상들의 죄에는 단순히 원망 섞인 메시지가 아니라 그들을 비난하면서 그들처럼 우리들도 행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특별히 문화라는 핑계, 즉 한국문화라는 핑계로 또는 세대차이에 따른 것이라 핑계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따르지 않는 것을 지적한다. 이 말씀은 천국 잔치에 초대를 받았지만 여러 핑계를 대는 자들과 비교할 수 있다.(마 22:1~5)

 
죄들과 중생

선지서들 가운데 이사야 19장의 애굽에 대한 경고를 예로 들어보자. 앞부분에서 애굽의 죄들과 그 응징을 설명한 후 18~24절에서는 회심, 즉 중생에 대한 권면이 등장한다.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지라도 치시고는 고치실 것이므로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들을 고쳐 주시리라.”(22절) 이뿐만 아니라 이렇게 중생한 자들의 모임인 교회를 위해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24절)라는 말씀이 있다. 하나님의 응징으로 인해 택함을 받은 자는 회개하여 교회로 돌아오겠으나 그렇지 않는 자들은 불평과 원망을 일삼을 것이다(3권 4장 31~34항 참고). 선지서들을 통해 죄에 대해 깊이 묵상하고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를 감사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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