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머슴이 된 목사, 진심을 얻다

선교사 파송 교육 중 방향 전환…복음화율 낮은 ‘생면부지’ 경남 합천에 정착
“십자가 떼라” 주민 거센 반발…집에 도서관 열고 정성 다하자 결국 마음 열어
지역 유일 카페 오픈, 섬김 목회 진력… “사역에 생명·사랑 있나” 항상 되물어


그는 12월 5일을 설레임 속에 기다리고 있다. 한적한 시골마을에 A급 가수들이 찾아와 공연을 펼친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출연하는 가수도 한 두 명이 아니라 조수아 민호기 아침(신현진) 소프라노 김인희 기타리스트 유지원 씨 등 좀처럼 한 자리에서 마주앉기도 힘든 스타들이 직접 방문한다니까 기대가 된다.

음향시설은 커녕 조명도 없을뿐더러 관객이라야 제대로 음악을 접해보지도 못한 촌부들이 대다수 일 텐데 직접 선물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와서 한마당 난장을 연다니까 이보다 기쁜 일이 또 있을까?

이것이 이진용 목사(초계중앙교회)의 힘이다. 그는 여태까지 “제 형편이 이러이러 합니다.”, “시골에서 미자립교회를 하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당최 아쉬운 소리를 할 줄 모르는 속 알 머리 없는 목사로 살아왔다. 그것이 이 목사의 매력이다.

이번에 음악회를 개최하는 것도 그의 이런 성품과 한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진정성을 알고 가수들과 스텝들이 스스로 찾아오겠다고 약속했다. 아무리 거절해도 막무가내였다. 이 목사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 2년 전, 군민의 날에 <자랑스런 합천인상>을 받았다. 초계면 택리마을 주민들은 난생처음 주민 공동명의로 그에게 지역 주민으로서 감사한 마음을 담아 감사패를 수여했다.
 

그는 오지를 고르고 골라 합천군 초계면에 똬리를 틀고 산지 9년이 되었지만, 목사라는 직함보다는 아이들을 바르게 선도하고 가르치는 ‘선생’이라는 단어가 어울린다. 아니, ‘초계면 머슴’이 정확한 표현이다. 이 지역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는 새벽이 되면 리어카를 끌고 파지를 줍는다. 빈 병도 수거하고, 헌 옷도 모아 고물상과 재활용 센터에 갖다 준다. 그리고 하루 버는 돈이 5000원 내외. 이 돈으로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간식을 산다.

오전에 <도토리의 꿈> 카페의 문을 열고 커피를 판다. 시골에 웬 카페냐고 의아하게 생각하면 오산이다. 비록 합천군 통틀어 유일한 카페지만, 그가 내린 커피를 맛보기 위해 내방하는 고객도 만만치가 않다.

그의 아내 이수진 쇼콜라티에가 만든 쵸콜릿과 케익도 이 카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진귀한 품목이다. 이 목사와 사모는 한적한 시골에 카페를 열기 전, 대구를 오가며 바리스타와 쇼콜라티에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땄다. 어설픈 짝퉁이 아니라 엄연한 전문가다. 저녁에는 도서관 관장(?)으로서 중고등학생을 돌보고, 게스트하우스 원장(?)으로서 방문객들을 살핀다.

이런 일만 하는 게 아니다. 초계면 대다수가 노인들만 사는 곳이라 이 동네 저 동네 쉬엄쉬엄 다니며 보일러도 고쳐드리고, 형광등도 갈아주는 것이 그의 주요 임무다. 힘이 부친 어르신을 대신해 장작도 패 드리고,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것도 그의 일과다. 누가 어디서든 부르면 달려가는 ‘5분 대기조’가 그의 역할이다. 한 마디로 초계면 마당쇠다.

그는 원래 경남 합천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서울 토박이다. 동대문구 이문동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공부했다. 경희대 호텔관광학과를 졸업하고 호텔에서 일할 때, 베스트 드레스에 뽑혀 호텔의 대표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몸에 배인 서비스 정신은 훗날 그가 남을 섬기는 자양분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후 아이들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가르치고 싶어 감신대에 진학했다.

신학대학 시절, 계룡산에 귀농하여 닭도 키우고 대안학교에서 레크리에이션을 가르치기도 했다. 몇 군데 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사역하다가 인도네시아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교육을 받던 중 갑자기 방향을 틀어 생면부지의 합천으로 왔다.

“아내가 인도네시아 선교지를 다녀온 직후, 국내에도 선교지가 많은데 굳이 해외로 나가야 될까? 라는 의문이 드는 거예요. 지도를 펼쳐들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복음화율이 낮은 곳을 찾았죠.”

그는 그렇게 해서 2006년 1월 합천 초계면에 첫 발을 들여 놓았다. 벼룩시장에서 장의자를 갖다놓고, 중고 성구사에서 종을 얻어다가 교회의 틀을 갖췄다. 십자가를 옥상 2층에 달고 흐뭇한 마음에 감사기도를 드렸다.

그런데 빨간 노을이 내려앉을 저녁 무렵, 동네 무당이 십자가를 떼라고 소리를 쳤다. 부녀회장이 찾아와 이곳에서 나가라고 윽박질렀다.

그 다음날에는 낫을 들고 사택 바닥을 내리치면서 행패를 부렸다.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스스로 해결하라는 말만 하고 떠나기 일쑤였다. 새벽예배를 드리는 중에도 무당은 매일같이 찾아와 교회 문틈에 부적을 태우고 굿을 하며 예배를 드리지 못하도록 훼방했다.

술에 취해 교회에 찾아와 동네에서 떠나라고 아우성치는 주민들도 한 둘이 아니었다. 아내와 6살 아들은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며, 서울로 가자고 애원했다. 1년 7개월간 그는 동네사람들한테 온갖 핍박을 당하며 외톨이처럼 살았다. 제대로 일어설 수가 없었다.

“한 번은 동네에서 힘깨나 쓰는 분이 술이 잔뜩 취한 채 교회에 왔습니다. ‘너는 왜, 이 마을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고 가르치려고만 하느냐? 나 같은 종자도 예수가 어떻게 인카네이션 한 지는 안다’며 침을 뱉고는 사라졌습니다. 그 때, 그 분을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삶이 목회라는 것을 다시금 알았습니다.”

그는 중고등학생을 위해 집을 오픈하고 도서관을 만들었다. 공부에 관심도 없는 아이들이 신기해서 찾아왔다. 집안이 온통 놀이터가 되어도 좋았다. 저녁마다 간식을 챙겨주고 자식처럼 뒷바라지를 했다. 주민들도 그런 그의 정성에 탄복했는지 통일교인이 간식비를 주고, 불교회 신도들이 보시금을 들고 찾아왔다.

이들은 지금은 자치회를 구성하여 정기적으로 아이를 위해 후원을 한다. 면사무소에서도 한몫 거들었다. 학생자치비의 재정을 지원하고 도움을 줬다. 난리가 났다. 지난 해는 서울을 비롯해 부산, 천안 등지의 대학에 합격자가 생겼다. 동네의 경사였다.
 

▲ <도토리의 꿈> 이진용 목사는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지만 이전에 기도의 대상이다”며, “삶이 곧 목회”라는 신념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도토리의 꿈> 카페도 거저 만든 게 아니다. 초계면에만 다방이 17개나 있었다. 동네 어른들의 사랑방이었다. 부끄럽지만, 퇴폐와 음란의 온상인 셈이었다. 그래서 2010년 오픈된 사랑방을 표방하며 과감하게 카페를 열었다. 지역의 허브 역할을 바라며 카페를 개설했다. 게스트하우스도 개방했다. 물론 무료다. 다만 먹거리는 외지에서 반입할 수 없고 지역에서 사와야 한다는 조건만 내걸었다.

그는 자신에게 늘 이렇게 묻는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생명과 사랑이 있는가?” 그가 고물을 줍자, 교회 마당에는 매일 빈 병과 각종 고물이 쌓인다. 지역주민의 사랑이 고물의 양만큼 쌓이는 것이다. 과일 장사를 하는 주민이 도서관 간식을 평생 제공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불교신자들이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도 조성하고 있다. 어줍짢은 표현이지만 초계면에 기적이 일어났다.

그는 2년 전, 합천인 군민의 날에 <자랑스런 합천인상>을 받았다. 초계면 택리마을 주민들은 난생처음 주민 공동명의로 그에게 지역 주민으로서 감사한 마음을 담아 감사패를 수여했다. 대다수 60~70세가 넘은 어르신들이 그를 주민으로 인정하여 감사를 표한 것이다.

그는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목회는 정류장입니다. 합천군 초계면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되어 떠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다면 섬으로 가고 싶습니다.”

그는 지금은 돌을 던지는 사람도, 협박을 일삼는 사람도, 술을 먹고 행패를 부리는 사람도 없다며 행복한 목회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 아닙니다. 기도의 대상입니다. 사랑하려면 기도부터 해줘야 합니다.”
 12월 5일에 열리는 지역 주민과 함께 하는 음악회도 한바탕 신나는 축제가 될 것은 안 봐도 안다.

글,사진=강석근 기자 harikein@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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