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의 배경만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역사적 사건은 없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16세기 유럽은 마을마다 교회당이 있었고 이들을 지도하는 성직자들이 있었다.

15세기말 콜로냐는 3만 명의 인구가 살았는데 교회가 무려 100개였다. 당시 콜로냐는 인구 300명당 1개의 교회당과 채플 수도원이 있던 도시였다. 이런 모습이 콜로냐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도시가 다 이런 상황이었다. 한 마디로 사회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났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교회가 기독교라는 이름을 사용한다고 해도 다 기독교는 아니라는 것이다.

종교개혁 이전 유럽사회는 교회가 가득했지만 교회와 성직자들은 성경에서 떠나 있었다. 따라서 종교개혁 이전 교회가 번성하였다 해도 성경에서 떠나 있었기에 개혁되어야만 했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는 종교개혁이 인간에 의하여 주도된 사건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였다고 보는 것이다. 당시 하나님은 경제구조의 변화와 정치구조의 변화를 이루시면서 교회 저변을 바꾸어가고 계셨다.

특히 인쇄술의 발명은 종교개혁을 가능케 하였다. 1450년 구텐베르그에 의하여 인쇄기가 발명되면서 1500년경 4만여 종의 책이 출판되었다. 당시 출판된 도서의 수량이 1000만권에 이른 것을 보면 당시 인쇄기 발명이 얼마나 출판의 혁명을 이루었나를 짐작케 한다. 이런 와중에서 변화를 거부하는 하나의 집단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로마 교황청이었다. 당시 변화의 시기에 있던 교회는 반기독교적이었다. 그 한 예가 왈도파의 숙청이었다.

피터 왈도(Peter Waldo.d.1217)는 프랑스 리용에서 태어난 신실한 그리스도의 제자였다. 이 사람은 자신의 가산을 정리하여 구제했고 성경을 번역하여 보급하면서 당시의 부패한 로마 천주교회를 개혁하고자 했다. 이들은 왈도와 그를 따르는 자들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100만 명을 처형했다. 성경을 소유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장애물이 된다고 생각하여 성경을 소유하거나 연구하는 것을 금하는 법을 제정했다. 따라서 1229년 이후 유럽에서는 평신도가 성경을 읽을 수 없게 되었다.

오늘 우리는 종교개혁 497돌을 맞고 있다. 지금 이 땅 위에는 종교개혁 시대처럼 수많은 교회가 산재해 있다. 당시 교회는 많아도 성경에서 떠나 있었던 것처럼 오늘 지도자 된 우리들이 성경에서 떠나있는 개혁 대상은 아닌지 묻고 싶다. 세속적 가치관에 안주하면서 지상 나라의 욕망으로 가득한 것은 아닌지 자신을 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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