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개신교와 가톨릭의 신앙직제일치 문제

일치운동, 더 많은 불일치 부른다

권력 출처 달라 직제 일치는 불가능
신앙과 신학 일치는 더 버거운 난제
진리 외면한 보편적 가치 추구 위험

 

 

가톨릭과 개신교의 직제 일치는 서로가 많은 것을 포기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일치를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


1. 직제의 통일이 가능한가.

가톨릭과 개신교의 직제는 서로 다른 조직을 갖추고 있다. 개신교보다 가톨릭은 훨씬 많은 직제를 갖추고 있다. 교계직제만 해도 개신교의 직제보다 방대하지만, 개신교에서 찾아 볼 수 없는 교황청 직제와 바티칸시정부 조직을 갖고 있다. 직제의 일치를 위해서는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가톨릭이 통치기구를 간소화하거나, 개신교가 가톨릭과 같은 방대한 조직을 형성해야 한다. 아니면 제3의 새로운 직제를 가톨릭과 개신교가 합의해서 만들어야 한다.

교계직제의 일치도 불가능한 시나리오이다. 가톨릭은 교황, 추기경, 총대주교, 대주교와 같은 직책을 없앨 수 없고, 개신교는 이 직책을 수용할 수 없다. 개신교는 성경에 있는 목사, 장로, 집사의 직책을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2. 교황에 대한 합의가 가능한가.

가톨릭은 교황 중심의 전제군주제도이다. 개신교는 대의민주주의 체제이다. 교권의 출처가 가톨릭은 교황의 신권(베드로의 열쇠)에 있지만 개신교는 만인제사장직의 공동연합체제이다. 본질적으로 권력의 출처가 확연히 다르다. 개신교는 교황의 사도좌의 권위와 우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면 가톨릭은 개신교와의 일치를 위해 교황직을 폐기 할 것인가? 혹은 개신교가 교황직을 수용할 것인가?


3. 성직자의 기능 통일이 가능한가.

가톨릭과 개신교의 성직자의 기능은 큰 차이가 있다. 가톨릭은 사제들이 성사를 통해 죄사함의 권능을 인정하고 있다. 고해성사를 통해 교인들의 죄를 사하는 직무도 인정한다. 성체성사에서 신부들의 축성을 통해 포도주와 빵의 화체됨을 인정한다. 과연 가톨릭에서 이러한 사제들의 권한과 기능을 포기하고 개신교의 목사들처럼 만인제사장직을 수용할 것인가? 아니면 개신교 목사들이 가톨릭 신부들의 기능을 공유할 것인가?


4. 신학과 신앙의 일치가 가능한가.

가톨릭과 개신교는 정치적인 직책의 일치도 요원하지만 신앙과 신학의 일치는 가능하지 않다. 성직의 직제론 차이는 고사하고 가장 중요한 구원론, 칭의론, 교회론 등이 다르다. 그리스도와 신자 사이에 교황, 마리아, 성자, 사제들, 그리고 성인들까지 중재자로 자리매김한 가톨릭의 신앙 구조를 개신교는 인정하지 않는다.

특히 인간의 공로가 의롭게 하는데 기여한다는 가톨릭의 주장은 개신교의 대헌장인 이신칭의 교리와 상반된다. 가톨릭은 교회와 성사를 구원의 수단으로 인정하지만 개신교는 인정하지 않는다. 이러한 신앙과 신학적인 차이는 일치가 불가능한 것이다.
 

일치운동, 더 많은 갈등과 불일치 가져올 것

가톨릭과 개신교가 교계직제의 일치를 가져온다 해도 가톨릭의 교황청의 직제와 바티칸시국의 조직은 그대로 존속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바티칸시국은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교계직제의 일치만 가져온다면 그것은 개신교는 가톨릭에 흡수 통합되는 형태가 될 것이다.

이런 현실적인 사실을 알고도 두 교단의 일치를 말하는 것은 고지식(naive)한 생각이다. 일치를 원한다면 가톨릭과 개신교의 신학자들이 테이블에 나와 서로의 장단점을 토론하고 잘못에 대한 개선과 실천이 선행된 후 일치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가톨릭은 중세시대와 종교개혁을 지나면서 종교탄압으로 무려 5,000만 명이나 죽인 경력을 갖고 있다. 가톨릭은 20세기에 들어와서 모양새 좋게 잘못을 고백하고 인정했지만, 교리에 대해서는 절대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토론을 통해 신앙과 직제에 대한 공통적인 진리의 토대를 마련하지 않고는 결코 일치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대안 없이 일치운동을 주장하고 행동한다면, 개신교 스스로 더 많은 갈등과 불일치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한국의 가톨릭과 개신교의 일치운동은 외형적으로 화합과 평화를 모색하는 모양새를 갖춰 사회적으로 기독교의 이미지를 좋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을 것이다. 즉 보편적 가치를 함께 추구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진리를 외면한 이러한 외형과 형식적인 일치 운동은 두 교단의 분열의 골을 더 심화시키는 역효과를 초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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