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강인춘
1907년 이화학당 내에 조직되었던 학생단체이다. 이화학당 내 최초의 학생조직으로 1905년경부터 추진된 바 있다. 처음에는 교사 이성회(李星會), 하란사(河蘭史) 등이 도왔다. 처음 성격은 오늘날 문예반과 같은 것이었는데 회원은 전교생을 대상으로 모집하였다. 단 15세 이상의 학생만 받았다.

활동 내용은 다양하여 매주 금요일 오후에 집회를 갖고 교과 시간에 배운 것 모두를 실제로 운용하는 기회를 가졌다. 즉 토론 연설 음악 연극 재담 창작발표 등을 주로 했다. 이는 학생들의 자치능력이나 과외활동을 크게 진작시켰다. 특히 대대적인 토론회나 웅변대회를 별도의 날을 잡아 거행했는데 이때에는 각급 학생뿐만 아니라 타 학교 학생, 각지의 인사들이 자리를 메웠다. 이는 1922년까지 계속됐다가 김활란 등이 중심이 되어 창설된 YWCA에 발전적인 흡수가 이루어졌고 이후 이화YWCA가 그 기능과 역할을 대신했다. (기독백과)

이화학당은 1886년 5월 31일 설립된 여성교육기관으로 미국감리회 여선교사 스크랜톤(Mrs. M. F. Scranton)이 1명의 학생을 맞아 자신의 거처가 있던 서울 정동에서 개교하였다. 1887년 명성왕후는 ‘이화’라는 교명을 하사한 바 있다. 여아소동, 청일전쟁 등으로 초창기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한국 근대여성교육의 요람으로 지속적인 발전을 이룩하였다. 1910년 대학과를 설치하는 한편 1918년 이화보통학교와 고등보통학교로 학제를 분리하였고 3·1운동 당시에는 각 지역 시위의 주동자가 되었다. (기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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